2024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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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생명과학과 생명철학(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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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다윈(Ch. Darwin)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겪은 당혹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이란 제목으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생명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일하게 창조되었다고 믿었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도 진화론의 지식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역시 자연과학이 생명에 관해 밝혀낸 지식에 대해 교회는 그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종은 그런 지식을 넘어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 우리 신앙의 확고한 기반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 두 선언은 모순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은 과학적 지식과 신앙의 진실은 해석학적 지평이 구분될 뿐 아니라, 나아가 실제로 있는 존재자가 다양한 실재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먼저 신앙의 진실은 존재의 근원과 그 의미에 대한 신뢰와 투신의 영역에 관계된다. 생명의 근원과 그 의미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바탕한다. 그러한 존재론적 관계 맺음은 인간이 지닌 모든 실존적 현재를 필요로 하며, 그에 따른 존재론적 결단의 문제이다. 객체적 실재와 그 존재성을 구분하지 못할 때 이런 혼란이 생기게 된다.

자연과학적 지식은 객체적 실재에 대한 정합적 사실관계를 밝힌다. 자연과학은 이것을 과학적 지식으로 제시한다. 그 지식의 존재론적 의미와 해석적 진실은 과학의 영역 밖에 있다. 생명철학은 생명에 관한 이러한 진리를 사유하는 학문이다. 생명철학은 생명과학의 정합적 지식을 해명하거나, 그런 영역에 대한 지식에 관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이 말하지 못하는 생명의 의미와 그 존재론적 맥락에 대해 이해하고 해명하는 작업을 전개한다. 철학은 객체적 지식을 떠나있지 않지만, 그 안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지식이 생명에 대한 진리를 전유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이는 실로 생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과학주의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사유는 다만 객체적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실적 영역을 넘어 그것의 존재론적 의미를 밝히는 데 사유의 본질이 자리한다. 철학이 본질적으로 초월론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처형장으로 몰아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분석한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은 흔히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평범성(banality)은 악이 일상적으로 널려 있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진부함을 고발하는 개념이다.

생명과 존재에 대한 민감함, 인간의 삶에 대한 존중을 상실하고 일상적으로 주어진 정합성에 매몰된 사고가 악의 평범함이다. 존재에의 놀라움을 상실하고 진부한 일상적 삶에 빠져있을 때, 그 진부함을 넘어서지 않을 때 우리의 선함조차 악으로 흐를 수 있다. 생명철학은 생명에 대한 이 진부함, 일상적으로 매몰된 삶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담고 있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놀라운 마음이 사라지고, 생명을 존중한다는 말조차 행정이 될 때, 생명철학은 성찰적 사유를 통해 그 진부함을 넘어서려 한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초월적이며 생명철학은 이 초월성을 말한다.



신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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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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