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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특별 기고] 현대에 순교영성 왜 필요한가? - 강석진 신부

복음의 진리는 생명·평화 수호 판단 기준/ 우리 스스로가 순교의 마음으로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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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진 신부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볼 때 ‘순교’ 및 ‘순교 영성’은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천주교 전래 초기에 ‘순교’는 ‘복음의 진리’를 지켜내기 위한 ‘생명의 헌신’이었다. 신앙 선조들은 ‘진리에 대한 탐구’로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교회를 형성했다. 당시 위정자들은 ‘천주학’을 ‘사교’(邪敎), 혹은 ‘사학’(邪學)으로 간주하여 ‘금지령’을 내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순교’로 ‘복음의 진리’를 지켰다.

일제 강점기에 ‘순교’는 일본의 탄압에 ‘신앙적 저항’의 의미를 지녔다. 당시 일제는 종교 탄압뿐 아니라 종교를 ‘침략 전쟁’의 정당화 도구로 삼고 있었고, 그러한 목적에 맞지 않는 종교단체를 해산시켰다. 민족 말살정책으로 한글을 없애고자 일본말을 쓰게 했고, ‘창씨개명’을 시켰고, 둘 이상이 모이면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통해 한국인을 강제로 ‘일본화’하고자 했다. 심지어 일제는 ‘순교 정신’을 ‘순국 정신’으로 어용화했다. 하지만 신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생명으로 지켰던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갖고, 당시 복자 축일인 ‘9월 26일’을 전후로 ‘복자 대례 미사’ 및 ‘복자 유해 공경 예절’을 거행하고자 당당하게 함께 모여서 전례를 하고, ‘복자 창가’를 우렁차게 불렀다. 그 때문에 일제는 ‘복자 창가’ 부르는 것을 금지시키곤 했다. 그리고 우리말로 ‘복자 축일 기념 강연회’를 개최했고, 전국 각 본당에서는 ‘치명 성극’을 통해 박해를 극복하는 순교자들의 삶을 재현했다. 평양교구에서는 평양 시내 곳곳을 걸으며 ‘순교자 제등 행렬’을 성대히 거행했고, ‘순교 사료 전시회’, ‘합창제’ 등을 통해 ‘한국 순교자들의 삶’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순교’는 또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필자의 생각으로 오늘날의 ‘순교’는 이제 ‘삶에서 묻어나는 영성’이어야 하고, 각 개인의 영적 성장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순교영성’를 영성화하는 작업 이전에, 우선적으로 ‘복음의 진리’가 지금의 시대에서 과연 필요한지를 물어야 한다. 만약에 ‘복음의 진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의미’, ‘무가치’, ‘무덤덤’의 의미가 된다면, ‘순교’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잃게 된다. 아니, ‘순교’라는 단어는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교회의 사투리’가 되며, ‘순교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는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복음의 진리’를 과연 필요로 하는가? 필자뿐 아니라 모든 이들 역시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복음의 진리’가 정치, 경제, 사회의 가치 기준으로 필요하고,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근거로 필요하며, 정의와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판단 기준으로 필요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복음의 진리’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다시금 ‘순교’의 옷을 입고, ‘순교’의 허리띠를 두르고, ‘순교’의 신발을 신고, ‘복음의 진리’를 위해 ‘순교’하러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금 우리는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에 ‘순교영성’은 왜 필요한가? 그건 우리가 지켜야 할 ‘복음의 진리’가 아직도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특히, 불의한 상황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삶을 부활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며,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가 세상의 가치가 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순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순교정신’은 단지 ‘죽는 정신’이 아니다. 순교는 영성이 되어야 한다. 각자가 묵상하고 생각하고 찾아내는 삶의 영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에서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순교영성’을 목말라하는 신자들의 모습,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주제가 있는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서울뿐 아니라, 멀리 지방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가하셨다. 그리고 한 번에 단 한 곳 성지만 간다는 원칙과 함께 이동 중에 차 안에서 간단하게 성지 안내를 하고, 성지에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그 달의 ‘주제’를 강의했다. ‘부부에 대해서’, ‘부모와 자식에 대해서’,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천주교 집안에 대해서’…. 그 나머지 시간은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지에서 하루를 보냈다. 신자들 역시 각자 나름대로 하루를 머물면서 ‘순교자들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에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자들이 하는 말이 ‘이렇게도 성지순례를 할 수 있구나!’하면서 무척 행복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성지순례’는 하루에 몇 군데를 가야 했고, 점심 먹고,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미사 등 시간에 쫓기듯 다녔는데, 성지에서 혼자 고요히 머물러 보니,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단지 나는 ‘성지순례’의 ‘주제’만 잡고 ‘주제 강의’ 하나만 했을 뿐인데, 신자들은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찾고 묵상하고 얻어가곤 하였다. 교회나 사목자가 주도적으로 ‘순교영성’을 끌어갈 것이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순교영성’을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줄 때, 그들 스스로 ‘복음의 진리’를 위해 헌신할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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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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