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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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고] 제 55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바티칸관''을 다녀와서

인간 근원에 대한 물음, 믿음, 희망 등을 예술로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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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술계 화두는 6월 1일 개막, 11월 24일까지 열리고 있는 제55회 `베네치아(Venice) 비엔날레`다. 역사나 전통, 영향력에서 전 세계 어느 국제미술행사보다 우위를 점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최근 `바티칸관`이 첫 등장했다. 1895년 창설 이래 117년 만의 일이다.

 `바티칸이 왜 베네치아로 갔을까?`, 이 의문을 풀고자, 또 국제미술계 흐름을 보고자 베네치아로 가서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돌아봤다. 아르세날레공원 한복판에 자리한 바티칸관은 현대미술 흐름 속에서 현대 가톨릭미술의 위상 내지 의미를 돌아보게 한 전시였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든 바티칸관에서 잠시 번잡을 내려놓고 영적 쉼을 체험했다.

 바티칸관 커미셔너 지안프란코 라바시(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 추기경의 말은 교황청이 왜 베네치아로 왔는지 이해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준다. "바티칸관은 예술가를 위한 교회의 문화 전통, 영감의 원천에 대한 근본적 테마를 선택했고, 특히 창세기 11장 `바벨탑` 이야기를 빌려왔습니다."

 바티칸관에선 기적이나 중세 성인 이야기, 순교 묘사는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미술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은유적으로 현대미술을 포용하고 현대미술과 소통하는 체험을 제공한다. 바티칸관은 다분히 반가톨릭적인 이미지나 힘의 과잉, 선정적 형상이 쏟아져 나오는 전시들과 나란히, 그러면서도 살짝 비켜 서 있다. 최첨단을 걷는 현재 미술축제에 교황청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교황청이 현대 세계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바티칸관 큐레이터 미콜 포르티는 "바티칸관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들어간 것은 기회"라고 얘기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데올로기, 종교 등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들어가며 : 타노 페스타(Tano Festa, 1938~88)
 바티칸관에 들어서면 `한 처음에(In Principio)`라는 글귀와 함께 시스티나성당 벽화 천지창조 가운데 아담의 모습이 우리를 맞는다. 이탈리아 팝아티스트 타노 페스타의 1970년대 후반 작품 3점으로, 바티칸관은 천지창조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을 `들어가며` 보여줌으로써 전시가 창세기 11장 사화를 빌려와 창조→파괴→재창조라는 맥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획 의도를 암시한다. 작가는 사진기법을 이용, 큰 패널 위에 시스티나 성당 천지창조나 메디치 가문의 무덤 이미지를 차용해 검은색 드로잉처럼 표현하고 프레임으로 짜인 캔버스에 붉은색 에나멜 페인팅으로 표현했다.


 
▲ 타노 페스타 작 `무제`(1979년 작).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사진작업을 이용해 창조라는 주제를 형상화했다.
 
 
 ▶창조 : 스투디오 아추로(Studio Azzurro) 그룹
 관객이 손을 움직이면 감응하는 미디어 아트로 이뤄진 첫 방은 어두운 빛 속에 사람 형상들이 고요히 움직이는, 마치 창조 한가운데 있는 듯한 감성을 일으키는 방이다. 어둔 방 안에 들어서면, 바닥과 벽면에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화면에서 사람들 형상이 우리를 초대한다. 어두운 빛 속에서 푸른색 스포트를 받으며 그에 대답하듯 손짓하면 잠시 후 화면에 새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성령의 말씀과 숨결을 통해 창조가 일어난 때를 떠올리며 동참하게 한다. 1972년 밀라노에서 사진작가 파비오 시르피노(Fabio Cirifino)와 그래픽 작가 레오나르도 산조르지(Leonardo Sangiorgi), 순수미술가 파올로 로사(Paolo Rosa)가 모여 결성한 그룹 스투디오 아추로 작품으로, 디지털 이미지와 물리적 공간을 통합하는 작업이 일품이다.


 
▲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형상의 아름다움을 함축하는 스투디오 아추로의 쌍방향 비디오 아트 작품 `한 처음에(그리고 후에)`.
 
 ▶파괴 : 요제프 쿠델카(Josef Koudelka)
 체코 사진작가 요제프 쿠델카(75)는 `파괴`라는 주제로 실존의 문제를 건드린다. 1960년대 말 프라하의 봄을 기록한 사진을 발표한 뒤 추방돼 20년간 유랑해야 했고, 복권된 오늘도 세계 곳곳 소수부족과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작가가 자신만의 눈으로 자연과 문명 파괴의 현장을 다룬 작품을 보는 건 가슴 멍해지는 감동을 준다. 그는 윤리적 의미를 잃어버린, 도덕과 자연법칙에 반하는 생태 파괴를 보여준다. 사람과 자연의 흔적들, 패악의 모습을 완고해 보이는 톤의 대형 흑백사진에 담았다. 쿠델카는 이 사진들을 바닥에 그대로 놔두는 독특한 전시로 관객들이 사진을 작품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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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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