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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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사도 문화사 동반해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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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를 방법으로

 일반 역사학 방법에서 테느가 배경 연구를 하였다. 그것은 또한 19세기 후반의 실증주의적 방법이었으며,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법이었다. 테느는 역사가이면서 동시에 문예사가였다. 그는 문학예술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사 서술이 비로소 가능하다 고 했다.
 그 앞 단계인 랑케의 사료 고증방법은 왕조사와 정치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세기 쉬펭글러와 토인비의 당위론적 방법은 역시 문화사적 방법의 연속이었다. 가치 중심이 다시 정치사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역사 발전을 뜻하는 근대화와 개혁이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문화 를 지향하는 것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문화란 넓은 의미로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문화가 사회생활을 보다 인간답게 해주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위대한 정신의 경험과 소망을 작품화하여 전달하고 보존함으로써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문화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성격을 띠며, 사회학과 민족학을 내포하게 된다(54항).
 여기에서 문화를 인식하는 요건의 하나로 민족학 이 제기됐다. 얼핏 가톨릭의 보편주의에 민족 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들이 있을 법하다. 그러한 추측은 사실과 다른 차질이다.
 「사목헌장」 외에도 교황 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와 교사」,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 방한 연설 「문화인들에게」 등 민족문화의 개성이 복음화를 효과적으로 돕는다고 한 공식 표명이 있어왔다. 이른바 일치 안의 다양성, 다양성 안의 일치 라는 황금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추구하는 일치는 초자연적 사랑 과 하느님 진리에 있다. 각 민족이 그들의 땅에 뿌리박은 문화의 재능과 개성을 갖고 있다면 교회는 오히려 그 민족문화를 북돋우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사가 문화를 동반하게 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한국 민족문화의 내용인 것이다. 교회는 민족문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신학교 교육과정에서도 민족문화에 대한 강의가 있어야 한다. 교회사 서술은 그리스도교 복음의 토착화라든가 육화를 확인하는 기준으로 민족문화와의 친화 정도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결국 한국 교회사가 인류 안의 보편된 교회사에 참여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하느님 문화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마지막 순서로 종합 토론이 있었다.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같은 동아시아 나라로서 한국에서는 천주교 교세가 큰 편인데 일본에서는 미약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단상의 주제발표자들이 질문의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했는지 명료한 답변이 나오지 못하였다. 이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질문이었다.
 일찌기 16세기 말엽에 유럽의 포르투갈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동아시아에 진출했다. 중국과 일본에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왔고 한국은 조선조 지식인들의 자발적 활동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천주교를 들여오게 되었다. 한ㆍ중ㆍ일 세 나라는 함께 유교 사상을 사회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1742년에 로마 교황청이 동양의 조상 제사의식 금지령을 천주교 신자들에게 전달했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천주교 수난과 순교 사태가 크게 일어났다. 1939년에 이 제사금지령이 해제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조선에서는 순교자 1만여명이 발생했다.  혹심한 순교와 박해를 겪고도 오늘날 한국 천주교 교세는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지금 정치적 이유로 교회가 제약을 받고 있지만 종교 자유가 있는 일본에서 천주교 교세가 미약한 이유가 무엇인가.
 김승혜 수녀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문화 안에는 전통적으로 하느님 을 우주의 주재자로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 조선조에서도 이황ㆍ이이ㆍ정약용 등 대학자들이 모두 하늘을 진리의 근본으로 여기는 천명사상을 지녔다. 조선 천주교 초대 교회의 지도자 정약종의 한글 저서 「주교요지」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충실히 담고 있다.
 반면에 일본 문화에는 우주를 주재하는 하느님 개념이 없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다신 숭배 풍습이 있다. 일본 고전 역사서인 「고사기」(712년)에 나오는 가미(神) 수는 800만 「일본서기」(720년)에 나오는 가미 수는 80만에 이른다고 한다. 삼라만상에서 경외감을 느끼면 임의로 신처럼 섬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집중력이 부족하다.
 민족별 문화 특성에 따라 그리스도 신앙의 형세가 이처럼 다르게 되었다. 일찌기 공자와 조상에 대한 공경 의식을 로마 교황청이 금지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앙의 자유와 더불어 서양의 과학문명이 한국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1939년에 교회가 방침을 바꾼 것은 스스로 차질을 인정한 것이다.
 교회도 인간의 역사 안에서 영위되므로 차질이나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인간의 차원에서는 오류와 극복이 일어나도 절대적 진리의 차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가톨릭 신학자 이브 콩가르의 말이다.
 가령 한국 천주교회사가 차질을 겪었더라도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은 그 순교 행렬은 위대했다. 교회사에는 한 길 발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차질에도 의미가 있다. 더욱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과 사도들이 순교한 무덤 위에 교회가 세워진 전통의 모범도 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다. 오랜 역사 안에서 실크로드와 유라시아라인을 타고 동서 문명이 가고 온 것의 마지막 축적이 있는 땅이 한국이다. 신라의 혜초는 720년대에 서쪽으로 여행해 동로마제국 비잔티움에 이른 일도 있다.  이제 하느님 진리를 지닌 보편된 교회의 동아시아 보루인 한국 천주교의 역사의식은 현대 세계를 위해 어떤 소명을 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대내적으로 한국 천주교 초창기부터 이룩한 신앙 문헌과 문학 유산들이 지닌 가치를 민족문화사 안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세상의 복판에 참여하기로 한 보편된 교회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역사의식으로 추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회사의 연구와 서술이 민족 문화사를 동반하는 작업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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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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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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