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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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석일웅 수사의 이라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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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일웅 수사(작은 형제회)와 김재복 수사(마리아회)가 6월7일부터 25일까지 천주교 평화연대 일원으로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 한국 가톨릭의 이름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주민들과 아픔과 희망을 나눴다. 한 수도자의 기도와 눈물이 묻어나는 이라크 방문기를 싣는다.

석일웅 수사(작은 형제회 천주교평화연대)
6월7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이스탄불을 경유 요르단 수도 암만을 통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들어가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이동 시간만 31시간. 특히 요르단과 이라크 사이의 국경에 걸쳐 있는 황량한 사막에서만 약 10시간이 걸렸다. 이라크는 섭씨 5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막의 연장이었다.
전쟁 이후 극심하게 불안정해진 전력공급 사정 해가지면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거리와 심지어 한낮에도 들려오는 총소리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무장 군인들과 탱크들 그리고 미국과 사담 후세인에 대한 국민들의 격한 감정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바그다드에 전쟁의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게마다 거리까지 내놓은 물건들이 전쟁을 쓸어내고 있었다. 교차로는 서로 엉켜 꼼짝도 않는 자동차들 때문에 혼잡했다.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뿜어대는 매연 북새통같은 시장…. 전쟁의 공포보다는 일상의 짜증으로 하루를 지치게 했다.
좌판에 담배 몇갑을 올려놓고 빈둥거리는 상인들과 그 앞을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 케밥을 파는 거리 음식점들 모두 힘겹지만 전쟁을 이겨가고 있었다. 천주교 평화연대와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그리고 작은형제회에서 모금한 성금은 약 1억1천만원.

천주교평화연대의 일원으로 김재복 수사(마리아회)와 함께 성금을 갖고 6월10일부터 이라크를 직접 방문하여 지원사업을 펼쳤다. 이 성금이 단지 물질로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전하는 하느님 사랑으로 전달되기를 염원하면서.
천주교 평화연대가 활동한 지역은 바그다드 주변의 5개 빈민지역이었다. 우선 초등학생 학용품 지원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지원후보지역을 돌아보던 중 마침 초등학교들이 시험지와 인쇄도구 연필 등이 부족해 기말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다. 학생들은 유급을 당할 처지였다.

처음 답사에서 15개 초등학교를 소개 받았지만 지원을 하는 사이에 학교수는 18개교로 늘어났다. 지역교육위원회조차 시험날짜를 연기하는 방법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던 상황에서 우리의 지원으로 학생들은 유급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식량지원. 시민들이 체감하는 물자부족은 심각했지만 식량만큼은 비교적 보급이 잘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지원하기로 한 지역의 모스크 공동체 책임자는 극빈가정에 설탕과 밀가루 그리고 식용유와 함께 아이들에게 먹일 분유를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의약품과 의료장비는 국내외 여러 단체가 긴급구호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지원했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병원과 의료지원이 가능했던 지역보다는 일차 진료소조차 없거나 새로 문을 여는 진료소들을 우선적으로 답사하고 지원했다.

가난한 나라의 거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바그다드도 거리마다 쓰레기가 넘쳐났다. 이 쓰레기가 오폐수에 섞여 자칫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어느 답사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자신의 몸을 보여 주면서 피부질환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사담 후세인의 장기독재와 경제봉쇄로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생활환경이나 위생문제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에 전쟁까지 겪었으니 환경위생 사정은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엉망이었다.

우리의 지원노력으로 이들 지역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 스스로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자극제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크루드족 난민에 대한 지원은 계획에 없었으나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그들에게 데려다 주셨다. 이란과 이라크간의 전쟁 이후 이라크 지역에 남게 된 이들 난민들은 23년간을 세계의 관심으로부터 잊혀진 채 마치 우리 안의 동물처럼 살아왔다.

이번 전쟁으로 말미암아 2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뜻밖의 기회를 얻었는데 그들 중 이주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100가구의 이주비용을 지원하였다.

지역상황과 주민실태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이라크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여섯살 난 사내아이 알 하와자(Al Hawza)의 꿈은 의사다. 포탄 파편이 몸에 박혀 여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할아버지와 아빠를 고쳐 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모하마드(Mohamad)는 몸의 절반을 가르는 수술을 받고서도 파편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수술을 몇 번 더 받아야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누워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흔 두 살의 가장 살람(Salam)은 자기 아이 5명과 과부인 두 형수와 함께 조카들의 양육까지 돌보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6개월된 갓난아기까지 아이 5명의 아빠인 모하마드가 나에게 미래가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할 수 있습니까? 라며 눈물을 흘렸을 때 우린 함께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자신의 가족사를 불행하게 만든 사담 후세인과 미군의 잔인함을 결코 잊을 수 없지만 아이들의 순수함과 희망을 지켜주고 싶기에 아이들에게 과거의 불행과 현재의 괴로움을 말하지 않는다는 살람의 크고 선한 눈망울을 주님께서 친히 기억해 주실 것을 인터뷰 내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바그다드를 떠나는 날 우린 서로 빨개진 눈시울을 바라보면서 헤어져야 했다. 우리가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그 시간 인간의 온갖 편견과 관습 때문에 갈라져 있던 하느님은 한 어버이 하느님으로서 우리에게 오셨다. 모슬렘이 국교인 그들을 만나면서 알라(Ala)는 그들만의 신이 아닌 한분 일 수밖에 없는 인류 모두의 어버이이신 신(God)의 한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은 우리보다 먼저 이라크에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하느님을 만나고 온 것이다. 크기를 잴 수 없는 은총이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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