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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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군사목에 대한 제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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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요. 저러다가 남편을 잃을 것만 같아요.

 임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자매한테 받은 전화다. 폭우로 떠내려간 폭발물들을 찾느라 밤샘을 거듭하는 남편이 과로로 죽을 것만 같아 심히 염려되던 터에 내게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짧은 군종신부 연륜 때문에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속만 태웠다.
 특전사에 근무할 때는 민주지산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초여름에 가까운 봄이건만 엘리뇨 현상 때문에 급작스런 폭설이 내려 훈련 중이던 군인 몇 명이 동사했다. 최정예 부대인 특전사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느냐 며 언론이 들끓었다. 후에 천재지변으로 인정돼 해당 사고 기사가 정정 보도됐고 그 후속조치로 아 민주지산 이라는 영화까지 방영됐다. 그 영화에는 특전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부대원들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실추된 명예는 원상태로 돌아오질 못하는 법이어서 언론이 참 밉기도 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제대를 겨우 몇 주 남긴 병사의 익사사고가 났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날 지휘관 눈을 피해 잠깐 물에 들어갔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늦은 밤 현장에 도착하신 그의 부모님은 한 달전 아들 녀석이 그토록 바라던 독방을 마련해 놓았다 며 이리 가면 어쩌느냐 고 절절히 통곡했다. 지휘관은 제게 맡긴 귀중한 자식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신의 죄 라며 부모님께 용서를 청했다. 너무나 애절한 사연 그리고 겸허하기만 한 지휘관의 모습에 그저 숙연할 뿐이었다.
 갓 전입해 온 이등병이 군 생활을 못하겠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니 이를 어찌해야 좋으냐며 장탄식을 늘어 놓는 신자가 있었다. 처음 겪는 신세대 장병의 극단적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나는 신세대 병사들에겐 동기 부여나 목적의식이 확실하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좋은 프로의식이 있으니 잘 다독거리라고 조언했다.
 막 입소한 훈련병들을 위문하러 간 적이 있었다. 군복을 입지 않은 병사가 있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위문을 마치고 그 내막을 들었다. (몸에) 맞는 옷이 없어 군복 두 개를 합쳐 재봉질을 하고 있단다. 입대 장병이 절대 부족해 예전엔 군복무가 면제되던 아이들까지 입소한다는 현실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을 교육할 지휘관의 십자가가 적잖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지휘관의 말이 걸작이다. 염려 마십시오. 사고 없이 다 제대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든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하는 시원한 말이었다.
 공소 미사를 갔다가 올해 초 벌어진 인분 사건으로 육군훈련소 연무대를 떠나 내가 사목하는 부대 공소로 전입해 온 요한 상병을 보고 놀랐다. 입소 장병을 교육하던 분대장으로서 그 책임을 지고 연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건의 파장이 빚어낸 또 다른 피해자였다. 생소한 부대에서 새로이 적응해야 할 요한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말이 참 궁했다. 마침 사순시기여서 이렇게 권유함으로써 위로를 대신할 뿐이었다. 십자가 졌다고 생각하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겠냐 고. 요한이가 기꺼이 그리 하겠다 고 대답해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다.
 3개월 전 차마 있어서는 안 될 최전방 초소(GP) 총기사고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우리 한국군의 현 실태를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지휘 계통과 군 입대 자원의 문제를 한꺼번에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군입대자 중 10가 복무 부적격자로 24시간 감시를 받아야 할 관심사병들이라고 한다(한겨레신문 05.06.22).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군의 지휘 체계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

 이제는 직업군인에게 특히 지휘관에게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들 사기는 곧 장병들의 안정으로 직결돼 군기강이 확립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군의 참다운 모습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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