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별기고] 대중매체의 우리말 훼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말과 글은 겨레의 얼이 담긴 그릇

스포츠 와이드 오픈 드라마 뉴스 퍼레이드 리얼 TV…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 제목이다. 옛날 우리말을 없애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한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은 나 같은 신부의 눈에는 대중매체들이 함부로 쓰는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대중매체 뿐만 아니다. 미용실 제과점 옷 가게 등은 한글 간판을 달면 장사가 망하기나 하는 것처럼 뜻도 알기 힘든 외래어 간판 투성이다. 한글 간판은 촌스럽고 영어 간판은 세련미가 풍긴다는 인식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상에서 우리말을 엉터리로 쓰고 있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말 이렇게 가다가는 앞으로 우리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말과 글은 의사전달 수단을 넘어 그 겨레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얼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말과 글은 자신의 얼을 지키듯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법이다.

더욱이 한글은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하고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감탄을 하는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이다. 자음은 발음 기관의 형상을 모음은 혀의 모양을 본 따 만들어진 과학적인 글자는 온 세계에서 한글 밖에 없다. 또한 한글은 표기의 폭이 매우 넓다. 한글 총수는 1만2768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가진 문자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만든 한글사전은 어휘가 50만자인데 옥스퍼드 사전은 40만자라고 하지 않는가.
국민들이 세계 어디에 견주어봐도 못할 것이 없는 우리말을 왜 자랑스럽게 쓰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영어를 쓰면 유식하고 세련돼 보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사대주의다.

물론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는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삶 속에서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외래어를 마구 쓰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한 본보기로 ‘월드 뉴스’는 ‘세계 소식’이라고 바꿔 써야 한다. 1990년대 초 흑석동본당 사목시절 KBS 직원의 전화를 받고는 “제발 ‘한국방송’으로 이름을 바꿔 사용하라”고 애원을 하다시피 한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한국방송’이라고 하는 것 같다.

대중매체부터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한글학회와 언론·방송인협회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를 촉구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구한말 한글을 널리 쓰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백성이 한자에 까막눈이던 그 시절에 경향잡지의 전신인 ‘보감’ 마태오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 등을 모두 한글로 펴냈다.

그런 공헌을 한 천주교회가 지금은 일반 사회보다 외래어를 더 많이 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들도 좀체 알 길이 없는 용어와 신심단체이름이 잘 드러나는 본보기다. 주교회의 용어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짚어주길 바란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1-11-1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0

히브 10장 24절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