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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회변화를 연구하는 모임- 정의채 신부 특별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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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를 연구하는 모임(회장 정지태 약칭 사변연)은 10월25일 서울 역삼동성당에서 제7차 특강을 갖고 미국에 대한 테러와 보복 전쟁을 계기로 폭력과 생명존중 이에 대한 해결 모색을 생각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특강의 주제는 ‘폭력·죽음의 문화를 넘어 사랑·생명의 문화에로-물질 대 정신 그리고 종교문화의 충돌을 넘어서’로 정의채 서강대 석좌교수 신부가 초청돼 강연을 했다.

오태순(서울대교구 제11지구장 겸 역삼동본당 주임)지도 신부와 평신도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특강은 지난해 10월 창립된 사변연이 마련한 일곱번째 강좌다. 다음은 정의채 신부의 강연 요지.


인류의 양심은 지금 두 가지 유형의 폭력 식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것이 불의한 폭력이고 어떤 것이 의로운 폭력이냐의 문제는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지정학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들을 같이 고려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일어난 어떤 현상만을 보고 규정짓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이런 의식을 촉발시킨 것이 또한 이번에 미국에서 일어난 폭력 참사다.

현재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에서 발생한 것 같은 폭력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과 지금 미국이 감행하고 있는 전쟁까지를 포함해 인간 생명 살상은 없어야 한다는 인류의 인간생명 존중 사상이 표면화 내지는 인류의 중심사상으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흔히들 이번 전쟁은 참으로 이상한 전쟁이라고들 한다. 우선 장소적 구분이 없는 전쟁이 된 점이고 둘째로는 폭탄과 식량 의약품 의류 등 생필품을 동시에 공중 투하하고 수송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찬 전쟁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인간 생명존중 사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는 공통의 생명문화를 형성해 나가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보복일 것이다.

이런 적대 의식은 근본적으로 종교 감정과 결부돼 그리스도교와 갈등과 전쟁으로 계속됐고 미국과의 적대감정으로 번진 것으로 생각된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이슬람권이나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세계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는 쪽에서 대화로 진정한 의미의 용서와 화해를 청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문제의 해결 방도는 정의롭고 사랑에 찬 진정한 것이어야 하며 무조건 쌍방의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한 것은 새 천년에 있어야 할 일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부의 문제와 관련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창조 경륜에 따라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공존하고 공영하는 방향을 잡아 기술과 부의 혜택을 골고루 그리고 올바르게 나누게 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이른바 선진국들의 몫이자 미국의 몫이다. 미국은 지금 앞선 기술과 거대한 부를 인류에게 이전하고 인류를 공영케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종교문화는 또 생명존중 사상을 기반으로 진정한 정의에 근거한 용서와 화합의 문화를 창출해 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의한 폭력과 정의로운 폭력을 구별하는 식별점이 무엇이냐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두 가지 폭력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핵심문제로 제기된다. 정의 없이 항구한 평화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정의 문제를 들고 나와 테러를 근본에서부터 뿌리뽑고 항구한 정의 실현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런 미국식 정의관은 이슬람 국가들에는 통하지 않는다.

정의는 사랑의 뒷받침을 받아야 올바르게 된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양쪽의 정의는 물리 보복적 정의이기 때문에 진정한 정의라 할 수 없다.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사랑으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 정의여야 한다.

그런 정의는 하느님의 모습으로서 인간 존재에 근거하며 그런 인간 삶에 실현돼야 한다. 즉 존재 문화는 생명 사랑 문화에 근거해야 한다.

폭력적 보복의 정의가 어떤 경우에 인정될지라도 그것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같은 관점에서 불의한 폭력과 정의로운 폭력을 식별해야 한다.

즉 역사적 물질적 정신적 모든 면에 걸쳐 이러한 정의가 실현돼야 인류에게 평화가 올 것이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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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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