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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말이 씨가 되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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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31일자로 전역한 김명환(대전교구) 신부가 군종장교로서 12년간 살아온 사목체험을 담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군사목의 어려움과 현실적 대안 군 신자들 바람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정확히 12년1개월을 군종신부로 살았다. 대부분 4년을 마치고 제대하는 단기자 군종신부와 비교하면 세 곱을 살았으니 할아버지가 돼 전역을 한 셈이다. 1993년 성주간 금요일 동료 신부 9명과 함께 경북 영천 육군3사관학교에 첫발을 디딘 후 내가 이렇게 장기자로서 소령으로 제대하게 된 것은 입소 후 며칠이 안 돼 일어난 해프닝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 우리가 노친네 라고 불렀던 김동훈 신부가 누가 장기 할 거야? 하며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별 뜻 없이 웃자고 한 그 말을 이렇게 넙죽 받아넘겼다. 내가 한 번 해보지 뭐! .

 그게 화근(?)이 됐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 신부가 주동이 돼 동료 신부들이 오리지널 향토 방위 출신인 나를 놓고 장기자 만들기 체제로 돌입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2주간 훈련을 마치고 대위로 임관하며 장교후보생 중 최고상인 국방부 장관상 을 받았다. 우리 사제들 우정이 빚어낸 멋진 드라마요 시원한 한판승이었다. 나중에 교회신문을 보니 천주교 역사상 20여년 만의 쾌거란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동료 신부들이 보여준 우정에 대해 감사드린다. 아울러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물심양면으로 함께 해주신 군종후원회 여러분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전역을 하고난 지금 여러 선배 신부님들 말씀처럼 나 역시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놓은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지난 12년 삶을 돌이켜볼 때 다소 죄스럽기도 하다. 한 달쯤 됐을까. 여러해 동안 쌓아놓은 사진과 사목자료를 정리하며 새삼 눈에 띄는 게 있어 한참을 쳐다본 적이 있다. 거의 매년 내용이 동일하다시피한 사목계획서 였다.
 하기야 군사목 자체가 안정적 기반에 있지 않으니 어찌 체계적 사목을 할 수 있었으랴. 내가 12년간 9개 군본당을 오갔고 군신자들마저 잦은 전ㆍ출입으로 사목 여건은 늘 유동적이지 않았던가? 특히 수시로 입소하고 제대하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 병사들이 사목대상의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으니 어찌 그 사목이 순탄했겠는가! 정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할 것은 많은데 할 수가 없어서 매년 사목계획서 내용이 거의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떤 때는 똑같은 것을 다시 실천해 보는 것마저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 (2디모 4 2)라고 하셨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되새길 때면 부끄럽기만 하다.
 알 만큼 알고 일할 때가 되니 제대하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왜냐 고 물어왔다. 답은 간단하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이것은 사목적 측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열정과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헤쳐 나가기 어려운 군 조직 특성을 포함한 말이다. 여타 군 내부 정황은 차치하고라도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가 하나로 움직여야 하는 군종부 는 존경은 못 받을지언정 이제 신뢰마저 잃은 지 오래됐다. 여기서 어느 특정 종교 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무튼 헤쳐 나가기에는 앞길이 너무 아득하고 체력도 고갈돼 스스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못 다한 열정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못 살진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6월 최전방 첫 부임지 열쇠성당 군종병 신학생들이었던 후배 사제들이 전역을 축하한다며 나를 찾아왔으니 말이다. 10여명 군종병 출신 신부들과 술잔을 나누던 그날 내 마음 속에선 미안함과 쑥스러움 보람 감사 등 갖가지 상념과 추억이 어지러이 뒤엉켰다. 신학생이 말이야 말만 뻔지르르하지 해놓은 것도 되는 것도 하나 없어! 신학생이 어찌 그리 감각(센스)이 없냐 응? 하며 늘 지청구만하던 나였기에! 그래서 다음날 아침 착하기 그지없는 사랑스런 신부들과 함께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말이 씨가 되어 장기자로 전역한 저에게 그동안 자비와 사랑을 듬뿍 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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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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