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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황철수 주교와의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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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교님의 사랑·도움으로
장애 극복하고 새 삶 시작”
부산교구의 보좌 주교님에 임명되신 황철수(바오로)주교님과 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제 소개를 간략히 하겠습니다. 저는 장애인 자활 공동체 푸른집의 설립자이고 1급 장애인인 전경환(안토니오)입니다. 약 20여명의 가족이 컴퓨터를 이용해 각종 인쇄물을 인쇄하는 일이 저희 가족 자활의 수단입니다. 모든 가족이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이며 주로 성당 레지오 각종 보고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6년 3월 수학여행 때 불의의 낙상사고를 당해 심각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 후 1년의 병원생활 뒤에 전신마비의 장애인이 되어 다시는 일어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의 도움 없이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 그 어떤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근무하던 부산고교 윤리 교사직을 사직해야했고 공무원 임대 아파트도 나와야 했습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 당시 주례성당의 황신부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 무신론자였던 저와 그분과의 만남은 늘 설전으로 시작해서 설전으로 끝났습니다. 그분은 오실 때마다 저희 딸과 아들에게 신권 천원을 주시곤 하여 우리 애들은 늘 기다렸지만 저는 귀찮기만 했습니다. 거의 2~3일에 한 번씩 들르는 그분을 보고 저는 속으로 신부님은 ‘참 한가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저씨! 이젠 제발 고마 오이소. 제가 요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돼 누구와 오래 토론할 정신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제발 저를 귀찮게 하지 말아 주이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황당하게 신부님을 ‘아저씨’라고 호칭했고 신부님 또한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신부님이 느닷없이 이런 서두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제가 이미 교직을 떠났지만 늘 그렇게 호칭을 하셨음) 어느 분이 대학까지 졸업을 했는데도 길거리 청소부(요새는 미화원이라는 용어로 순화되었지만 당시는 그렇게 불렀음) 직업을 가졌어요. 그런데 그분이 어려서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자기가 장차 청소부가 되리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요?”
그 난데없는 질문에 저는 아무런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화두와 같은 황 신부님의 질문 한마디는 저를 깊은 상념으로 몰아갔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개척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굳게 믿었던 저는 절대자로부터 ‘숙명적으로 주어지는 삶’에 대해 밤새 생각하게 되었고 황 신부님이 들려준 수형자(당시 황 신부님은 주례 구치소 사목을 돌보고 계셨음)들의 많은 일화도 떠 올렸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처지로 남은 인생을 과연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는 그저 ‘죽는 것이 최선이다’는 생각밖에 안하던 저는 “그래…주어진 삶에 대해 도전해 보자”는 결의에 도달하였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저는 절대자의 도움을 얻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의는 정말 하룻밤 사이에 몰아쳤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저에게 시작된 크나큰 은총의 거대한 전주였습니다.
다음날 저희 가족의 전교에 맹활약을 하던 이웃의 수산나 자매님께 세례를 받겠다는 결심을 전했고 그때부터 통신교리를 시작했습니다. 통신교리를 마치고 바로 황 신부님으로 부터 집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참 쓸쓸한 세례식이었으나 제게는 의미깊은 세례식이었음)
저희 집 애들도 교리를 시작하게 하였고 오랜 교리 후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당시 황신부님은 제게 세례를 받아라 어째라 하는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끈질기고 지속적인 문답 속에서 본인 스스로 결론을 도출하게 하는 교육학에서 말하는 소위 소크라테스적인 방식으로 저를 설득한 것입니다.
당시는 2층 연립목조의 낡은 전셋집에 6명의 가족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우리 소유의 아파트에 20여명의 적지 않은 가족이 하루하루를 주님의 은총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레지오에도 가입하여 신앙생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보도를 통해 황신부님이 부산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도 제 기쁨은 남달랐습니다. 그분한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제가 공동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동안 그분과 당시에 나누었던 그 특별한 문답과 제게 들려주셨던 일화들이 두고두고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몸이 성했을 때보다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분이 제게 너무도 아름다운 씨앗을 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전경환 (장애인 자활공동체 푸른집 설립자)
전경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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