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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다시 ‘내 탓이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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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양보하고 베푸는 미덕을”

‘내 탓이오’는 고해성사를 받기 전에 바치는 고백의 기도에 있다. 자신의 가슴을 치며 자기 허물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잘못된 것은 자신의 잘못마저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있다. 천주교는 자신부터라도 ‘내 탓이오’하며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때 서로 믿고 사는 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신뢰회복을 위한 ‘내 탓이오’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인간은 아담과 이브 때부터 ‘네 탓’으로 시작하였음을 볼 수 있다.(창세기 3장) 이것이 인간 타락의 시작인 셈이다. 이 같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중국 청나라대의 안지추(安之推)란 정승은 자신의 가훈 십조를 통해 “잘된 일은 반드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된 일은 반드시 내 탓으로 돌리라”는 당부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나라 정국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을 걷고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나라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남 탓만 하고 있다”며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말을 들려주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모 칼럼니스트는 한 인터넷 매체에서 “추기경의 근심은 엉뚱한 데서 비롯됐다. 추기경의 말에 더 침묵할 수 없는 사항이 됐다. 그는 현실을 호도할 뿐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는 말로 예의 ‘네 탓’ 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7,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젊은이들을 위해 그들을 잡아가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정부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때는 옳다하다 지금에 와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려는 것은 용납하기가 어렵다.

교회가 외쳐온 ‘내 탓이오’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일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신 기워 갚기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이 ‘내 탓이오’에는 인내, 책임, 봉사, 사랑의 뜻이 담겨져 있다.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하며, 자기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참고 양보하고 베풀어야 하며 겸손하며 희생적이어야 하고 용감해야 한다.

지난날 천주교회는 겸허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한 이 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바탕에서 이 운동은 한 종교 단체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한 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인 정신으로 확산돼 나가기도 했다. 1996년 3월에는 세계 137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평화봉사단을 통해 세계적인 정신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내 탓이오’는 학문도 이론도 아닌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생활신조다. 또한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진리가 담겨있다.

전문가들은 도덕과 양심의 회복은 종교적 역량으로 가능하다며 종교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종교들을 보면, 불교 1500만명, 개신교 1300만명, 천주교 480만명 등 3280만이라고 한다.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토록 살벌하고 혼탁한가. 그것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사회에 나가서 실천에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새벽시장을 가던 30대 주부가 길을 건너던 중 차에 치여 숨져가고 있는데도 사고 현장을 지나던 행인들은 피해자의 전대에서 흩날린 230만원의 돈을 줍는데만 정신이 팔려 끝내 그 여인이 죽고만 사건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 행인 중 한 사람이라도 옳은 신앙인이 있었던가.

국민이 잘하면 정치인이 잘못할 수가 없다. 한쪽만 잘하고 다른 쪽이 못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일이 서로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뒤틀리게 된다. 모두가 ‘내 탓이오’하고 서로 양보하고 아량을 베푸는 습성을 갖는다면 분명히 우리 사회는 달라질 것이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국민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위기 국면에 처해있다. 이러할 때 다시 한번 모든 국민이 ‘내 탓이오’ 정신을 마음에 새겨 지금 자신이 선 자리에서부터 실천을 옮긴다면 우리 민족과 나라는 새로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박정훈(요한.한국평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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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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