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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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나의 부활은 어디쯤에] 그대 마음 속에 봄이 오는가 부활이 오는가

김영진 신부(원주교구 구곡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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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찬 눈보라와 폭풍우를 이겨낸 고목에서 새 생명이 싱그럽게 돋아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은 삶의 굴곡을 하느님 은총으로 받아들여 새 희망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새벽미사를 봉헌한 후 성당 옆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동산을 산보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작고 길고 편안한 동산이기에 하루 종일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나무들이 다 푸르렀기에 의식하지 못했는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면서 침엽수는 거의 없고 활엽수만 가득한 적막한 분위기의 동산임을 알게 됐다. 모든 나뭇잎들이 떨어지고나니 왠지 오래 된 친구가 멀리 떠난 듯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주머니가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봄이 돼 가지마다 숨바꼭질 하듯 살금살금 움터 오는 실눈 같은 싹들을 보면서 아하~ 늘 푸르렀다면 갓난아기 같이 맑고 청순한 눈동자 모습을 한 저 새싹들을 어찌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묵상을 하곤 한다.

 사실 늘 푸르렀다면 만져보고 싶지만 혹시 새싹들이 아파하지 않을까 또는 내 손에서 세상 찌든 냄새난다고 찡그리지 않을까 염려돼 그저 바라만 보며 미소 짓는 이 아침의 평화와 환희를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늘 푸른 잣나무 소나무도 나름대로 묵은 잎 털어내며 새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참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철쭉나무 산수유나무 밤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갓난아이처럼 빙그레 웃으며 곁눈질 하듯 실눈을 뜨는 이 감격. 그리고 콧구멍이 갑자기 커지며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머리가 상쾌해지면서 영혼이 맑아지는 듯한 이 느낌을 주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나는 굴곡 없는 늘 푸른 나무보다 굴곡이 있는 나무 즉 사랑으로 잉태하고 키운 잎들을 다 빼앗기고도 긴 겨울 눈보라치는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시 생명과 희망을 주는 저 굴곡 심한 활엽수가 돼야 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아직도 아침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 희뿌연 하늘을 바라본다.

 인생은 굴곡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사실 그 굴곡이 있어 더 아름답다. 강풍이 불 때 굴뚝에 매어 놓은 줄에서 나는 소리가 더 웅장하다 고 노래한 독일의 어느 남작 말처럼 인생도 강풍이 불어 올 때 그를 이겨내는 소리가 더 웅장하고 가슴에 담기 벅찬 그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부활은 무엇인가.

 바로 뼈아픈 굴곡 때문에 얻어진 선물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에게 죄없이 매 맞고 얼굴에 침 뱉음 당하고 옷 벗기고 조롱당하고 뺨 맞고 발로 채이며 흙먼지 자갈길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무거운 십자가 지고 가시어 죽으신 삶의 굴곡이 없었다면 생명과 희망의 새싹을 그리고 승리와 영광의 부활을 찾을 수 있겠는가. 부활은 그가 겪은 굴곡에서 탄생되는 생명과 희망 승리와 영광의 새싹과도 같은 것이다.

 굴곡을 피하지 말자. 오히려 굴곡을 통해 나에게 오고 있을 하느님 은혜 즉 새싹을 보자. 풀톤 쉰 주교님은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하느님 은혜를 못 보는 것이 문제다 라고 하셨다.

 일부러 굴곡의 삶을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예수님이 사신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두가지 굴곡을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첫째 굴곡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라는 굴곡이다. 자기 중심에 익숙한 우리들이 이기주의와 교만 게으름 자기 합리화 등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려는 굴곡을 향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남보다 더 많이 희생하고 양보하고 일해야 하며 털 깎이는 양처럼 순수하고 겸손하며 바보 취급을 당해야 한다. 그런 아픔과 굴곡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웰빙(well-being)이라는 미명하에 자기 입맛을 채우고 자기 취미와 자기 근육을 키우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족 혹은 교우들 입맛을 챙기고 그들의 영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뛰어다니다가 쓰러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굴곡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종의 신분을 취하시어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 자신 중심에서 인간사랑 중심으로서 고통이라는 굴곡을 자청하신 것이다.

 둘째로 현실 중심에서 벗어나라는 굴곡이다. 현실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생명을 요구하는 굴곡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현실 중심이셨다면 그분도 돈버는 일 명예나 출세를 얻는 일에 뒤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당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시며 청빈으로 사신 것 그리고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고 하시며 제자들 발을 씻겨주신 것은 현실 중심에서 벗어나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분이 오른쪽 뺨을 치면 왼뺨마저 대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주며 겉옷을 달라는 이에게 속옷까지 주자고 하신 것은 그러면서도 마지막 원망이나 변명 한마디 없이 모두를 용서하며 죽으신 것은 굴곡을 자청하신 것이다.

 우리 역사의 위인 이순신 장군이 현실 중심이었다면 그는 모사꾼들 음모에 수차례 걸려들어 옥고를 치르고 관직을 박탈당한 채 백의종군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일제하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토마스가 현실 중심이었다면 그는 여순감옥에서 홀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중심이 되면 세상은 질서가 무너진다. 목청 큰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세상 권력 가진 이의 한 마디가 진리가 되는 세상이라면 그리고 돈 가진 이가 무조건 양반이 되는 세상이라면 세상 질서는 무너진다.

 현실 중심에서 벗어나자. 물질 중심 권력 명예 중심에서 벗어나자. 가난한 이에게 재산을 내놓고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살려면 현실 중심에서 벗어남으로써 오는 굴곡을 각오해야 한다. 그 굴곡의 삶이 부활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교회와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분이 백번 천번 부활하셨다 해도 지금 내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늘 푸른 나무에게서 봄의 새 기운을 느끼기 어렵듯 삶의 굴곡이 싫어서 자기 중심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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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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