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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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리시대의 성령(11)

주님 영 있는 곳에 모든 은총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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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신학적 원론(原論)

구약에서의 성령

구약성서에서 378회 사용된 히브리어 루아흐(ruah)는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로 늘 번역되는데 숨, 입김, 공기, 바람, 영혼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 안에 살아 있는 힘이고 생명의 원리이며 지식과 감정의 자리이다.

그것은 또한 하느님의 생명의 힘이며 그분은 이를 통해 활동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활동하게 하신다. 성서에서 루아흐 -숨은 육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몸의 생기 그 자체이다. 루아흐 - 프네우마는 단순히 바람(요한 3, 8; 사도 2, 1~4, 6)이나 생명을 전하는 하느님의 숨(탈출 15, 8~10), 또는 생명의 원리요, 표지로서 인간의 숨(창세 7, 22)일 수 있다. 우리는 영에 의해 가장 높이 고양된 삶의 활동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고 하느님 자신의 숨이 부여하는 영감과 계시의 상황에서 인간과 그의 정신 체계를 이해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로잡을 때 그분은 심신(深信)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인간 전체에 영향을 미치신다. 이처럼 오래된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은 정상적인 것에 적합한 분별력과 지혜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체험들은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 계획의 실현을 보장하는 앞의 체험들과 공통점을 가진다(창세 41, 38; 민수 11,16.27,18). 영웅과 판관들 안에 주님의 영(숨)이 작용하며(판관3,10.14,19), 첫 왕 사울을 시작으로 왕들에게 머물며 다윗의 후손 예수에게까지 이른다(1사무 10, 6~13; 이사 11, 1~2). 성령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루아흐를 50회, 에제키엘은 46회 사용하였다. 하느님의 영-숨 은, 유배지에서 하느님 백성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그 안에 파고들어 그들을 성화시킨다(요엘 3, 1~2 참조). 이는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탈출이며 새로운 계약이고 새로워진 백성이다. 지혜 문학에서의 지혜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영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영이며, 하느님의 능력의 숨이고 전능하신 분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 없는 빛이다(지혜 1, 6~7; 7, 22~8, 1 참조).

신약에서의 성령

이브 콩가르(Yves Congar)는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나자렛 예수님 안에 완성되었음을 드러내는 복음은 요한의 회개 호소와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마르코 1, 1이 전하는 ‘기쁜 소식의 시작’이고 이는 종말론적인 시간의 시작이요 보편적인 소명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영의 선물로 특징을 이루는 때”라고 이야기 한다.

마태오와 루카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결정적으로 세례 사건에서부터 영을 통해 활동하시고 영과 친교를 나누신다. 영은 당신 사랑을 표현하시고 일치를 가져오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통하여 인간에게 온다. 영의 첫 보냄은 - 성 토마스는 성령의 파견이라고 말한다- 마리아의 태 안에 발생한 어린 예수를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의 아들(메시아)”로 세우는 일이었다.

세례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이 머무는 메시아로 선언되고 새로운 통교 내지 파견이 이루어졌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영을 가지고 있었고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의 신현(神顯)에서 이를 확인해주었다. 이는 예언자들이나 바오로의 경우처럼 부르심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식 안에 메아리치는 선언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선언 곧,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시어(요한 10, 36),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마태 3, 13~15), 왕-메시아요 종으로, 무엇보다 ‘사랑받는 아들’로서 인간을 위하여 완성해야 할 사명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루카 4, 18~21). 이제 그분은 영 안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영광을 받아 주님이 된 후에는 당신 친히 영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세례 때 예언자적인 직무를 위해 축성되었다면, 하느님의 오른편에 높여졌을 때 그분은 영을 보낼 것이다(사도 2, 33 참조).

바오로 서간

영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체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그리스도요 주님으로서 영광스럽게 된 부활절 사건에 전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로마 1, 3~4). 십자가의 구속에 의존하는 영의 은사는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성취한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어서 율법이 아니라 신앙의 경륜 안에서 실현된다(갈라 3,14). 아브라함의 축복과 약속의 대상인 이 영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이 영은 신앙을 일으키는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도달하며 복음 선포 안에서 작용하신다(로마 15, 16). 신앙인은 믿음과 세례로 영에 따라 사는 삶을 시작한다. 이 세례는 거룩한 삶에로의 진입이고 행진이며(2테살 2, 13~14), 우리가 선택되고, 개인적으로 사랑받고, 하느님과 일치에로 불림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의 직무는 무엇보다 토대를 놓는 사도의 직무이다. 사도는 특별히, 영이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하여” 활동하시고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1코린 12장 참조).

사도 바오로가 의미하는 은사들은 현대 가톨릭 신학 안에 당당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오 12세는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은사를 말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올바로 자리 매김하였다. 그 뒤로 신학자들은 사제직과 주교직을 포함한 직무의 쇄신과 관련하여 공동체의 건설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을 위해 영이 부여한 선물 내지 재능으로서의 은사들을 교회론에 다시금 도입하였다.

은사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모든 영적인 작용은 영의 현존을 구하는 기도를 요구한다. 교회로부터 받아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믿음은 늘 하느님의 영의 작용 아래 훌륭한 그릇에 보관된 값비싼 음료처럼 싱싱하고, 이를 담고 있는 그릇도 싱싱하게 만든다. 교회는 이 하느님의 은사를 위탁 받았음을 안다. 마치 하느님께서 형성된 육신에 숨을 맡기셔서 모든 지체들이 생명을 받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은사 안에 그리스도의 은사 곧 성령의 친밀함이 담겨 있다. 하느님은 교회 안에 사도들과 예언자들, 교사들, 그리고 영의 작용의 모든 결과를 세우셨다. 교회(ecclesia)에 달려오지 않는 자들은 이 영의 작용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영이 있는 곳에 교회와 모든 은총이 있다. 그리고 영은 진리이다.”(이레네우스 Irenaeus,Lyons)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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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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