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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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내 성지순례 ‘유감’

“성지순례가 마치 소풍같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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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수 신부
 
지난 28년간 본당사목을 하였고, 지금은 해미순교성지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사목을 하고 있다. 본당사목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제생활의 새로운 변화를 느끼며 기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지만 성지사목을 하면서 매우 아쉬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여 국내 성지순례에 대한 좀 더 바른 정신이 요구됨을 느끼면서 다음의 몇 가지를 두서없이 적어본다.

성지순례는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기도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하신 성경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 신자들은 그 길을 배우고 익히는 방법의 하나로 신앙선조님들의 발자취를 찾는 국내 성지순례를 자주 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지순례가 그저 봄, 가을의 소풍 정도로 취급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린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을 다니던 태도가 오늘의 성지순례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성지순례는 소풍이나 관광이 아니다. 성지순례는 말 그대로 신앙선조님들의 발자취를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더욱 충실히 따르기 위한 기도이다. 그런 뜻에서 성지는 소풍장소나 관광명소가 아니고 거룩한 기도의 장소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사참례 후 준비해 온 음식 먹고, 술도 한 잔 마시고, 쓰레기 버리고, 아예 준비해 온 듯 칼 들고 배낭 메고 성지주변이나 뒷산에 올라 나물 캐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른 순례단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큰 소리하며 놀이하고(따라온 어린이들은 완전한 놀이터) 있으니 될 말인가?

모든 순례자는 현지의 미사에 참여 하고 (꼭)반드시 예물을 봉헌해야 한다.

왜냐하면 순례를 와서 미사에 참예하고 예물을 봉헌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순교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피 흘림 없는 순교”를 살아야하는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는 여러 방법으로 순교적 삶이 요구되는데 특히 성지에서의 미사참예와 예물 봉헌은 “지금” 나를 바치는 작은 순교이며, 순교자님들의 피로 거룩해진 땅을 한 층 더 거룩한 땅으로 승화시키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거룩한 의미를 저버리고 그저 본당예산을 걱정하며 굳이 따로 미사를 지낸 다음 봉헌예물을 가져간다든가, 또는 특별 헌금의 형식으로 생색내는 모습, 심지어는 성지자체 미사에 타 본당 순례자들과 함께 참여하면서도 자기 본당 헌금바구니를 따로 돌린다든가 하는 등의 웃지 못 할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제가 있는 성지는 서울 소망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개신교에서도 순례를 오는데 그 숫자만도 년간 약 오천 여명에 이른다. 이분들도 순례를 오면 한 곳에서 예배를 보며, 어느 교회는 목사님과 함께 40 여명의 신자들이 이곳 미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이분들은 반드시 예배 중에 헌금을 해 사무실에 봉헌하고 떠난다. 과연 우리도 개신교 성지에 순례하여 그곳 예배에 참여하며 봉헌하는 경우가 있을까? 저들의 봉헌정신과 타 교회에 대한 열린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실 성지는 어느 한 본당이나 교구의 범위를 벗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으므로 성지의 개발, 관리, 유지 역시 모든 순례자들의 기도와 봉헌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이 현실이며 그것은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모든 순례자들은 성지를 순례하면서 당연히 예물 봉헌을 해야 하며, 그것은 성지에 아까운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순례행위의 중요하고 분명한 기도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봉헌 없는 순례는 반쪽 순례일 뿐이고 그저 구경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례자들은 그곳 성지의 봉사자들과 협조관계를 이뤄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오는 순례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순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성지에는 사목자와 봉사자들이 상주하고 있거나 최소한 연락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순례자들은 미리 사무실에 연락해 협조를 요청해야한다. 그래야만 언제, 어디서, 몇 명이, 몇 시에 오는가를 알고 준비해 순례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연락 없이 도착해 성지 안내, 식사 장소, 세면 장소, 심지어는 요리 도구 요청 등으로 인해 미리 연락된 순례자들을 위해 일해야 할 봉사자들에게 차질이 생기는 어려움을 주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들은 본의 아니게 불친절하다는 말까지 듣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제 가을이 되면서 많은 신자들이 국내 성지순례를 가게 될 것이다. 언젠가 사제 연수회에서 신자들의 신앙심이 성숙하는 가장 큰 계기는 성지순례라는 통계를 본 일이 있다. 우리 신앙인들의 성지순례 마음가짐이 보다 아름다워진다면 신앙심 역시 훨씬 더 성숙하는 은총을 받게 되리라 믿으며 성지 사목자로서 늘 기도한다.

백성수 신부(해미순교성지 책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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