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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리시대의 성령 (13. 끝)

하느님 섭리에 대해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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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현존과 분별

분별은 한 사람의 삶의 특별한 관점에서 그의 인품과 조화를 이루는 행동을 발견하고, 평가하고, 행동하게끔 또는 자제하도록 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종종 모든 것이 가장 불확실해 보이거나, 문자 그대로 ‘걸으면서 길을 만들어야’할 때, 그 순간이 바로 자신이나 공동체가 최상의 방향으로 인도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현실의 삶은 굴곡이 있고, 기쁘고 만족할 뿐만이 아니라 실망하고 당황하게 하는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장하고 가장 깊은 곳에서 불림을 받은 사람이 되는 시기는 확실히 이 모든 불확실성과 예기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결정해야 하는 힘든 순간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다. 일단 선택한 것에서 생겨나는 결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나 하느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다른 선택들을 포기하고 선택을 한 것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만이 결혼이나 다른 봉사를 위해 남은 생애를 투신할 수 있다. 이것은 시간을 뛰어 넘는 지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유롭게 신비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의 부르심의 한 차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영역 안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분별한다. 이것은 매일의 삶의 보이는 영역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인 현존을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바오로 사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관상적 지식을 영적인 성숙으로 설명하는 데,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은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1코린 2, 12~13)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믿음과 제대로 형성된 전통을 바탕으로 신뢰할 만한 지침에 따라 선택을 하고 행동한다.

분별은 항상 여기에서 그리고 지금 행동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분별은 전체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관련하여 선택, 행동, 그리고 결과를 신중히 고려한다. 우리가 진실로 누구인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삶의 궁극적인 지평에 의해서 가장 기초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투신하도록 불림을 받은 것은 무엇인지와 관련해서, 깊은 묵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삶이 더 위대한 사랑 안에 토대를 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준점’을 복음에 둔 이냐시오 로욜라나 위대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분별이 그리스도의 삶의 복음의 토대 위해서 시작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존재 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느님을 관상하고, 신뢰하며 믿음을 통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 없고 무엇이 적당한지, 곧 크리스천 믿음이 제공하는 의미의 지평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관하는 데 있어서 분별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건들, 일들을 통해서 오는 다양한 메시지를 분별하는 기회들을 매일 접하게 된다. 남은 전 생애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니고 있는 지혜안에서 점차적으로 성장하도록 불림을 받는다.

그들의 분별 과정들은 삶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알려주는 신비의 지평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자의 신비한 계시의 빛에 의해서 조명된 사람, 곧 자신이 바라는 독특한 삶의 목적에 대한 가치를 분별하는 데 있어서 성숙한 사람이다.

이 희망이 그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선교와 더 큰 목적에 대한 의식으로 고취될 때, 모든 것은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된다. 삶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묵상하고, 성찰하고, 기도하면서 알아듣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 확실하게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지를 이해한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의 현존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묵상하거나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 때에만, 시도해 보지 않은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삶의 단계들 안에서 제공되는 성령의 새로운 이끄심을 믿음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반복되는 묵상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충실한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린 후에야 야망들, 또는 생존적인 충동을 버릴 수 있고 개방과 겸손으로 이러한 새로운 삶의 환경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신비에 참여할 때처럼 매순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으려면 마지막까지 함께 하실 거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해서 조명된 마음의 눈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분별을 통해 삶에서 기대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사건들 모두 안에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주는 지침들을 좀 더 여유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느님의 신비에 초점을 맞추게 될 때, 모든 대립들을 사랑의 방향으로 충만케 하고 그 안에서 현존하는 성령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침내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을 움직이고 지시하도록 허락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징표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으려고 하는데, 성령의 감도 하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영원으로부터 그를 위해 계획된 자비하신 하느님에 속하게 되어 성장한다.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성령의 현존과 감도하심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예민한 감수성을 얻기 위해서 외면의 고요함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침묵의 필요하다. 곧, 모든 위대한 관상적인 전통에 따른 기도, 곧 침묵 안에서의 기도를 우선시해야 한다.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부르고 계시는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적인 또는 그렇게 영적이지 않은 매일 일어나는 삶의 사건모두에 정직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우리 존재를 뒷받침해주고 충만케 하는 영원한 실체”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분별은 삶의 영역 안에서 성령이 감도하심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잘못 결정된 것을 바꿔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외에 아무것도 온전히 확실한 것은 없다. 이 믿음은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우리의 유일한 보증이 된다. 우리는 매일의 삶의 복잡한 실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을 선택하셨다는 것과 “세상에 나가 열매를 맺는”(요한 15, 16) 방법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가능한 모든 분별의 기초가 되고 그분의 왕국은 특히 어두움과 변화의 한복판에서 모든 윤리적인 결정들에 대한 기준이 된다.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이름을 통해 보내신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당신이 하신 말씀을 모두 되새기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한 14, 26 참조). 그 후 그들은 포도나무의 가지와 같이 더 큰 능력에 의지하고,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신뢰하면서 소명을 수행해 나갔다.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전담)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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