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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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형, 폐지되는 그날까지] 5. 오지혜 영화배우

사형제 폐지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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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맨 워킹’이란 영화 보셨나요? ‘데드 맨 워킹’이란 말은 미국의 사형수들이 사형집행 당하는 날, 지내던 감방에서 사형장까지 걸어 나갈 때, 그러니까 생의 마지막 발걸음을 할 때 간수들이 외치는 말이라고 합니다.

‘deadman’, 죽은 사람, 즉 시체를 말하죠. ‘시체가 걸어 간다라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몇 분 후면 죽을 사람한테 마지막까지 참 잔인하구나 싶고, 아직 숨을 쉬는데 자기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시체 나갑니다!”하고 외치는 걸 듣는 사형수의 심정을 헤아리니 소름이 돋습니다.

이 영화의 홍보 카피는 “죽을 놈이 죽는데도 눈물이 난다”였습니다. 정말이지 숀펜이 맡아 연기한 ‘그 놈’은 험하게 말하자면 ‘쳐죽일 놈’이었습니다. 한적한 공원 한구석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를 위협하고 애인이 보는 앞에서 여인을 강간한 후 그 둘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게다가 별 반성하는 기미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법’이 그를 아주 정·당·하·게. 죽이는 걸 보여줍니다. ‘살인’이 아닌 ‘처벌’말입니다. 독극물 주사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그 놈’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해결됐냐고, 정의가 도래했느냐고 말입니다.

저와 제 남편은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않지만 사형제 폐지운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왜냐면 끔찍한 사건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 입장에선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범인 보다 더 미우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성폭행 한 후 죽이거나 유괴 후 죽였다는 뉴스들을 볼 때마다 내 아이도 아닌데 엄청난 살의를 품게 되는 것을 고백합니다.

‘인간’이니까 용서해주자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런 말은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니까요. 우리 부부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긴 하지만 생명은 신만이 다루는 것이라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 역시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저희 부부는 사형제도 자체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인 사형이라는 벌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백퍼센트 범인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 사형제로 인해 정말 끔찍한 범행이 현격히 줄었다면 또 혹시 폐지를 반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범인 열 명은 놓쳐도 억울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법이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지는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생각’이 권력자와 다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어이없이 목숨을 뺏긴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우리 부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토론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에 우리 딸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 놈’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잔인하게 오래 오래 괴롭히다 죽일 거라고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더군요. 마치 정말 그런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던 남편은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얘기합니다. “그래도 ‘제도’가 살인하는 건 반대야.”라고요.

이번엔 제 자신에게 질문해봤습니다. 만약에 딸이 그런 일을 당한 상황에 한 편으로는 남편이 억울한 누명을 써서 사형을 당하게 됐다고 한다면? 남편이 억울하게 죽더라도 딸의 원한을 풀어주는 쪽과-그런다고 원한이 풀릴 것 같진 않지만-비록 평생의 한으로 남겠지만 딸을 죽인 범인의 목숨과 남편의 목숨 둘 다 살리는 쪽, 이 둘 중 어느 쪽을 택할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택했습니다. 사형제도가 없어서 받는 상처보다 그 제도가 존재해서 받을 상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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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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