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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회 베드로 키베와 동료순교자 187위 시복식] 특별기고 ''일본 복자 188위 탄생을 보며''

류한영 신부(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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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거행된 ‘베드로 키베 사제와 동료 순교자 187위 시복식’에는 한국 교회 시복시성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 시복 청원인 류한영 신부, 법정 직책자 4명이 참석했다.

일본 교회의 시복식을 남다르게 지켜본 시복 청원인 류한영 신부의 시복식 참관기를 통해 일본 교회 시복식의 의미와 한국 교회 시복시성운동 활성화를 위한 전망을 담아본다.

“일본교회의 아픔과 부활 체험”

‘순교의 맥’ 잇는 기점인 한국교회 124위 시복
기도·노력으로 준비를

11월 23일. 일본 ‘베드로 키베 사제와 187위 순교자 시복식’에 가는 나의 마음은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 10여년을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 시복 조사 업무에 몸담았던 나에게 이번 시복식은 색다른 기대와 부러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가 모집한 3박4일 일정의 순례단 46명에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 위원장 박정일 주교님과 시복시성 재판관 대리 이찬우 신부님, 검찰관 박동균 신부님, 공증관 이창영 신부님이 함께 했다. 이렇게 124위 순교자 시복 재판 법정 직책자들은 미래의 한국 순교자 시복식을 내다보며 일본 시복식 참석을 위해 순례 여정을 시작했다.

11월 24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시복식은 시작됐다. 로마의 시성성 시복 청원인 페르난도 로호 신부가 188위 순교자들에 대해 소개했고 전 교황청 시성성 장관 마르틴스 추기경은 이러한 청원을 받아들여 교황 서한을 낭독했다. 1603년부터 1639년까지 일본 전역에서 순교한 188위의 시복이 장엄하게 선포된 것이다. 한국의 사제들과 순례단은 일본 신자들과 시복의 기쁨을 나누며 시복된 순교자들의 초상화 제막과 비둘기들의 비상을 지켜보았다. ‘몇 년 후 늦어도 10년 후에는 이러한 시복식이 한국에서도 있겠지’하는 기대감 속에.

시복식 후 계속 된 미사 제1독서는 시각장애인이 읽었고 제2독서는 순교자 후손으로 보이는 노인에 의해 봉독되었다. 신자들의 기도는 시복된 순교자와 관련된 9개 교구의 신자들이 하나씩 준비해 일본 교회 전체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복사들이 일일이 제병을 들고 나와 행렬을 이루는 예물봉헌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3시간40분이 걸린 장엄 예절이 끝날 때까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순교자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사 말미 일본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위원장 미조베 주교님의 인사말 중 27년 걸린 시복식 준비의 어려움과 기쁨에 대한 소감은 한국 순교자 시복 청원인인 나에게 더욱 인상적이었다.

1984년 103위 순교자 시성식 직후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는 누락된 순교자들의 시복 운동이 움텄고, 1997년 주교회의의 통합 추진 결정 이후 오랜 노력을 거쳐 2008년 11월 시복 조사 문서의 공증이 마무리됐다. 이제 한국 주교회의는 내년 상반기에 최양업 신부님의 성덕에 대한 시복 조사 서류가 마무리되는 대로, 124위 시복 예비 조사 문서를 로마로 송부하게 된다. 과연 로마에서 진행되는 시복 조사의 본심 절차는 몇 년이나 걸릴 지 궁금하다. 그 기간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신자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한국 교회가 노력하는 만큼 그 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귀국을 앞둔 11월 26일 오전. 사세보시 미우라성당을 찾았다. 성당 게시판에는 주일학교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일본 주교회의 신앙교육위원회가 시복식을 앞두고 주최한 미술대회 출품작들이다. 일본 교회는 시복식 사전 준비와 행사를 통해 미래의 주역이 될 청년과 어린이들이 교회의 초석이 되는 순교자들의 삶을 습득하게 하였다. 또한 일본 주교회의는 시복식을 기해 188위 복자의 시성 기도문을 인준하고 배포함으로써 순교자들의 전구를 통해 신앙의 쇄신과 교회의 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팔십이 넘은 분이 여섯 분이나 계셨던 순례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걸음을 시원시원하게 걷지 못하면서도 온 힘을 다하여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분들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일본 시복식을 통해 300여년의 긴 박해를 당한 일본 교회의 아픔과 부활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일본 교회는 네 번의 순교자 시복(1627년의 26위, 1867년의 205위, 1981년의 16위, 2008년의 188위)과 두 번의 시성(1862년의 26위, 1987년의 16위)을 경험했는데, 이번 188위 일본 순교자 시복의 특징은 일본 주교회의가 주관하여 일본에서 최초로 시복식이 거행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두 번의 시복(1925년의 79위, 1968년의 24위)과 한 번의 시성(1984년의 103위)을 경험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에서 거행된 103위 시성식은 우리에게 커다란 영적 기쁨과 희망을 주었지만 현재의 청년과 청소년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다. 때문에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124위 시복은 순교의 맥을 잇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복 시성의 절차와 선언은 특별하고 이례적이 일이 아니라 교회의 일상이란 사실을 일본의 시복식 방문을 통해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 교회는 아직 시복 조사가 되지 않고 있는 조선 시대 순교자들과 한국전쟁(6·25)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의 당위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특별하게 하는 일들이 아니라 교회가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는 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후예들로서 그분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과업이고 도리이다.

사진설명
▲일본 사세보 미우라성당에서 한국순례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박정일 주교와 사제단. 왼쪽부터 한국교회 124위 순교자 시복재판 재판관 대리 이찬우 신부, 필자(청원인 류한영 신부), 박정일 주교, 검찰관 박동균 신부, 공증관 이창영 신부.
▲11월 24일 일본 뉴 나가사키 호텔에서 열린 시복 축하연에서 인사를 나누는 한국 주교단.
▲시복식 다음날인 11월 25일 일본 나가사키 26순교성인기념성당을 찾은 한국 순례단이 바오로 미끼 성인의 유해를 참배하고 있다.
▲일본 사세보 미우라성당 입구에 전시된 초등부 어린이들의 시복식 기념 미술대회 출품작.

이승환 기자 swingle@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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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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