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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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는 ''작은 추기경''을 찾아 나서지요

최창섭(바오로,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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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섭 교수
 

이제 김수환 추기경님은 육체적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분이 남기신 숭고한 사랑의 실천적 모습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단순한 남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많은 이의 삶의 지표로 살아 움직일 것이다.

 우리 민족 역사상 마치 인산인해를 이루듯 지역과 종파와 이념과 정파를 모두 초월하고 나이와 성별을 넘어서 한마음으로 이어진 그 많은 사람들의 애도의 물결 속에 떠나신 분도 없을 것이다. 범국민적 표상으로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 계실 것이다. 그분의 살아생전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성해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미디어에 비친 많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분 유해 앞에 머리를 숙여 조용히 흘렸던 눈물은 곧 자신들의 성찰의 눈물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큰 분 앞에 서면 저절로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모습의 내일을 다짐해보는 진솔한 마음의 소리들은 분명 나의 소리이기도 했다.

 또 육성을 통해 재현되기도 하고 글을 통해 전달되는 그분의 평소의 끝없는 `사랑`의 소리도 더욱더 멀리 퍼져나가며 실천의 응답으로 들릴 것이라 믿는다. 명동성당에 안치된 유리관 너머로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잠시 뵙고 나오는 길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에세이 집 2권으로 된 `신앙과 사랑`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엮어낸 `김수환`사진첩을 통해 새삼 그분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

 더구나 현재도 살아 움직이시는 듯 그분이 몸소 실천으로 옮기신 `장기 나눔`은 천파만파 증폭하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생명운동으로 퍼져나가는 `기적`(miracle)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예수님께서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기적을 행하셨듯이 추기경께서 보이신 장기기증이라는 실천이 바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기적의 파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새삼 숙연해진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4-5000명의 사람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따로 있을까. 대신 오늘은 마음의 양식을 먹이시는 그 기적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물리적인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분의 삶의 모습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고 계시다. 그리고 그분은 분명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남겨주고 가신 듯하다. 즉, "나를 추모하는 물리적인 행사로 그치지 말고 앞으로 나가서 숨겨진 `작은 추기경`을 찾아 나서시오" 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분명 주변에서 말없이 선행을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름다운 `작은 추기경님`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시인 에머슨은 일찍이 `아름다운 성공적인 삶`은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작은 사람들로, 그들을 예찬하며 `권력과 명예와 부`만을 추구하려는 세속적 성공과 다른 아름다움을 노래한 적이 있다.

 평소에 가려지거나 눈에 띄지 않으려는 겸손함으로 결코 나타나지 않는 작은 손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작은 예수님`(Little Jesus)을 찾아 나서야 하듯이, 또 마더 데레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숨겨진 `작은 마더 데레사`를 찾아 나서야 하듯 주변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마치 40여 년 아니 80여 년 전 하느님께서는 일찌감치 소년 김수환으로 시작하는 스테파노 신부에게서 작은 추기경의 모습을 미리 보아놓으셨듯이.

 미디어도 큰 이름만을 따라 나서지 말고 숨어 있는 미행을 발굴해내 그늘에도 햇빛이 들면서 광명의 따스함이 더욱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미디어의 새로운 모습을 추기경님은 떠나시면서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고 있지나 않은지? 일찍이 예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가르치셨듯이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에서 숨겨져 있던 미담과 선행과 모범적 삶의 표상을 찾아 나서기를 추기경님은 우리들에게 과제로 남겨주신 듯싶다.

 이름 없이 빛을 발하는 가려진 별들을 찾아 나서자. 이제 떠들썩하던 외형적인 눈물을 씻으면서 그 분의 소리 없는 소리에 귀기울일 때가 아닐까. 청무성(聽無聲: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경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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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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