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별기고] 평화의 여정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나는 한때 강원도 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는 것을 매우 좋아한 적이 있다.

 강원도 도로 중에 특히 마음에 든 도로는 강릉과 속초를 잇는 도로다. 어느날인가 속초시를 조금 지나서 비무장지대를 향해 가는 길이었는데 검문소에서 제지를 받았다. 무장 군인들이 멈춰 세웠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참으로 아쉬운 체험이었다. 아름답고 즐거운 여행이었는데 도로를 가로막은 장벽 앞에서 나의 여정은 좌절되었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휴전선 근방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경험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막혀서 되돌아가게 되는 일은 비단 도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뜻을 전달하고 모든 일상생활과 문화를 이루는 의사소통이라는 도로도 있다. 이 도로의 교통수단은 언어 이다. 이 언어라는 교통수단을 사용하여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과 체험들을 세상에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언어는 독백이 아닌 대화여야 한다. 언어가 의사소통 도로라면 대화는 그 도로를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게 하는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를 앞둔 도로에서 내가 경험했던 그 아쉬운 느낌이나 슬픔은 사람들과 대화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도 경험한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내 안으로 들어가 답답함을 안은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피조물의 으뜸이라는 우리가 삶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평화의 여정을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삶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도로와 그 도로를 자유롭고 책임있게 다니기 위한 자동차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언어와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주는 대화이다. 이로써 우리 삶의 여정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의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어와 대화라는 충분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로와 자동차만 있으면 소용없다. 지도와 신호와 표지판을 읽고 도로 상태를 파악하고 운전할 줄 알아야 운전자격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언어와 대화에 대해서도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동행자로서 대화하고 운전을 교대로 하며 주변에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작품을 함께 즐기는 이 모든 일은 즐겁게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이 즐거운 여정에 필요한 기술을 우리는 배우려하거나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 오감과 생각과 감정과 체험들을 나누고 서로의 신뢰심이 발전하도록 부드럽게 나아감과 멈춤을 조절하는 것. 우리에게 이런 대화 기술이 있는가?
 우리는 생활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단과 충분한 기술을 지니고 있다. 언어와 대화 -도로와 자동차-는 우리 삶의 여정을 놀랍도록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 먼저 우리 삶을 평화의 여정으로 만들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언어와 대화를 평화의 우선적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5-02-2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3

2티모 1장 10절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