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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싸우며 사랑이신 하느님 체험

세계 병자의 날 특집 / 백혈병 환자 오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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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좀 더 웃어봐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아내 김명자씨가 남편 오세영씨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기흉(폐에 구멍이 생기는 질환)으로 재입원을 반복한 오씨는 최근 퇴원한 후 외래진료만 받고 있다.
 
 
   교회는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념일(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병자의 날을 선포하면서 "모든 사람이 고통받는 형제자매의 얼굴에서 고통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셨던 그리스도의 거룩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올해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우리가 치유되는 것은 고통을 비켜 피하거나 고통에서 도망침으로써가 아니라, (중략) 무한한 사랑으로 고통받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고통의 의미를 찾는 노력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백혈병과 폐렴을 앓으면서도 신앙의 끈을 더 가까이 당긴 오세영(시메온, 62, 인천교구 상3동본당)씨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났다.


 "앞으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밖에 못 사십니다."

 2010년 7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오세영씨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두 자녀와 아내를 둔 가장이자 전기기술자로 살았던 오씨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혔다.

 `주님, 부르시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있습니다. 못다 한 일 마무리하고 가도록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자마자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살면서 채워온 모든 애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새롭게 처한 모든 환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한 세월만 20년이었다. 20년 동안 일주일마다 60단씩 묵주기도를 봉헌했다.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냉담교우를 회두시키고, 본당 기획분과장으로 부지런히 봉사한 그였다.

 "무균실에서 격리된 채 투병하는 동안 고통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이 면회를 오면 인터폰으로 대화하는데 유리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가슴 아팠습니다. 유리벽 너머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웃으려고 노력했어요."

 그가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한 만큼 본당 신자들의 기도도 그칠 줄 몰랐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받던 중 백혈구 수치가 0에 가까워져 합병증으로 폐렴이 왔다. 백혈구 수혈을 못하면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고 합병증이 악화돼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예비 사위가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백혈구 수혈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학생 15명이 병원에서 적합성 검사를 받고 백혈구를 기부해 오씨는 가까스로 생명을 구했다.

 오씨는 "중간고사를 앞둔 시험기간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참으로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2010년 12월 마침내 골수이식을 받았다. 그러나 후유증인 숙주반응으로 눈과 구강에 궤양이 번지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는 몸이 너무 아파 기력이 빠질 때마다 침상에 몸을 곧추세우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합병증으로 호흡이 가파르고, 열이 40℃까지 치솟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환자들을 기억했다.

 "잘못되지 않는다는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픈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고,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목실 수녀님께도 말했어요.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요."

 오씨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을 받아들이면 내 고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도 이해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씨는 "그 고통은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크기가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나는 이미 아픈 환자이고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며 "내가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털어놨다.

 모태 신앙인으로 유년시절에 라틴어 복사를 섰던 오씨는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있다는 것을, 투병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 "넓게 보면 희망이 보인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병상 위의 내 모습만 보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할 때는 남들이 해주는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면서 "아프고 나니 그 기도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남편을 간호해온 아내 김명자(이피제니아, 58)씨는 "남편이 투병생활로 힘들었던 만큼 하느님은 그것을 이겨낼 힘을 다른 곳에서 채워주시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평범한 일상이 다시 주어진다면, 오씨는 기타를 치며 선교하는 게 꿈이다. 그는 골수이식 후 퇴원하자마자 기타 학원에 등록해 기타를 배웠다. 오씨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나누고 싶은 신앙 이야기와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를 위한 선교 계획을 정리해뒀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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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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