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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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집]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II [4주차]

아름다운 40일 향한 계속되는 절제·인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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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들과의 결별로 인한 괴로움은 한편 새로운 것에 대한 눈뜸이기도 하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40일을 향한, 계속되는 절제와 인내의 시간 속에서 기자들은 그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묵상해보는 또 다른 뜻깊음을 체험한다.



‘커피 끊기’ 이주연 기자

의식적으로 ‘커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잔의 커피가 그리워진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도 커피와 관련된 내용들을 더 자주 뒤적거리게 되는 듯하다. 그 때문에 커피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커피와 연관된 나의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 정확한 연도는 며느리도 모른다고 한다. 1830년대에 당시 선교사로 한국에 있던 프랑스 사제들이 커피를 마셨던 것이 시작이었다는 추측이다. 커피에 대한 한국인의 첫 기록은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다. ‘외국 사람들은 커피, 홍차 같은 것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숭늉, 냉수 마시듯 한다’고 적었다.

내 기억 속의 첫 커피는 언제일까 머릿속을 더듬어본다. 커피를 유독 즐기셨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커피는 매우 익숙한 대상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대학시절을 거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분쇄된 커피가루를 여과지에 넣어 뜨거운 물로 걸러내는 드립식 커피, 이른바 원두커피에 맛을 들이게 됐다. 그렇게 나에게 가까이 온 커피는 하루 5~6잔이 기본이 될 만큼 ‘일상’이 됐다.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이유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행위’라고 할 만큼 접하는 순간 감성적, 정신적 영역으로 침투해서 자유스러움과 행복함으로 이끄는데 있다고 한 커피 칼럼니스트는 소개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되는 커피의 또 하나 매력은 ‘느림’의 이미지다. 설탕 크림을 첨가하지 않더라도, 티스푼으로 커피를 한번 저어보는 시간만으로도 ‘속도전’같은 ‘빠름’의 흐름을 비켜가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다시 간절해지는 커피 내음이라니….

커피 머신 옆에 두었던 사순 저금통이 아직은 배가 홀쭉하다. 그래서 아직 절반이나 남은 ‘40일의 약속’을 초심의 마음으로 새롭게 다잡을 겸, 작전을 좀 바꾸기로 했다. 애당초 커피를 마시고픈 유혹을 느꼈을 때 마다 저금을 하기로 했었는데, 이제 남은 기간 동안에는 저금 액수를 두 배로 높이자는 것이다.

사순절과 관련 한 신부님이 쓰신 칼럼 속에서 “사순절 극기 절제의 현대적 의미는 고행이라기 보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있다”고 했다. “인내로 자신을 극복하고 남의 곤경에 관심을 가지며 절약한 것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의 동기로 희사하는 것.” 글을 읽고 있자니, 절제를 통한 애긍의 실천도 실천이지만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부분에 마음이 머물렀다. 이번 사순절, 커피와의 결연은 그간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금주’ 서상덕 기자

기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버리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감이다. 몇 차례 마감을 해치우다 보면 하루가,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통념을 깨고 있는 게 바로 이 사순 기획이다. 올해 사순은 왜 이리 긴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력에 눈길이 가며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리저리 넘겨보곤 한다. 전에 없던 일이다.(사순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휴…우.)

한 주에도 몇 차례씩 고비가 닥치고 그 위기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올 때면 가슴이 폭발할 정도로(정말이다.) 방망이질 친다. 이번엔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벌써 몇 차례 위기를 넘긴 나로서는 무슨 약속을 잡는 게 큰 부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가울 법한 사람도 만나기가 두렵게 다가오는 이 상황. 과거 나를 대하던 사람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술로 인해 생긴 별명 가운데 하나가 ‘에이즈’다. 술자리에서 나한테 걸리면 죽는다는 이유에서다.(물론 이 별명을 붙여준 이도 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주당이다.) 술자리에서만큼은 단연코 누구에게도 주눅들어본 적이 없는 내게, 지금 이 상황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술자리(이게 말이 돼?)가 이어지면서 불만스런 생각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획에 동참한 다른 기자들은 대체재라도 있잖은가. 비록 성에는 안 차겠지만 커피 대신 녹차나 홍차를 마실 수도 있는 거고, 스마트폰이 아니라면 피처폰이라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술은! 술은…. 딱히 대체재가 없다. 어쩌란 말인가. 내겐 너무 가혹하다.(도대체 누가 내게 이 일을 시킨 거야?) 이 기획 아이디어를 내놓은 동료기자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대체재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술을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아시는 분 제발 좀 알려주세요, 저 이러다 말라 죽겠어요.) 술잔에 다른 걸 채워보라고?(안 해본 줄 아나.) 물이고 음료수고…, 해볼 만 한 건 웬만큼 해봤으니 더 그렇다. 기도로 채우라굽쇼? 그게 술잔을 앞에 두고 있으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술자리에 아예 가지 말라는 말은 우리 직업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괜히 술자리 빠졌다간 뒷담화 작렬이다.) 이런 고민 속에 나의 40일은 흐르고 있다.
 
‘스마트폰 끊기’ 조대형 기자

원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모니터 앞에 앉으니 지난 2주가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나는 지난 3회 기사를 통해 ‘스마트폰이 없어 불편한 건 차치하고 허전하다’고 밝힌 바 있다. 4회를 시작하며 정정의 필요성을 느낀다. 불편한 건 쉽게 차치할 수 없는 문제다.

‘스마트폰만 있었다면….’ 요즘 밥 먹듯이 드는 생각이다. 최근 약속장소를 찾지 못해 한 참을 헤매다 결국 약속시각에 늦어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전에는



가톨릭신문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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