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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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동화] 종이상자의 꿈

글=최선아, 삽화=임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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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런색 종이상자입니다. 그것도 아주 빳빳하고 큰 종이상자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다른 내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나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아마 폼나고 멋진 물건을 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생각만 하면 그냥 행복해서 웃음이 납니다. 나는 내가 만나게 될 물건을 아주 포근히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끝까지 지켜주고 싶습니다.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창고는 매우 춥습니다. 나는 빨리 이 창고를 떠나 어디로든 가서 새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많은 선물을 사게 될 겁니다. 쇼핑몰과 백화점이 바빠지면 나도 여기를 빨리 떠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눈이 내립니다. 눈이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오늘은 이 창고를 떠나 콧바람을 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갑자기 창고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오전에는 내 앞에 있던 상자들이 모두 세상 구경을 나갔으니 오후에는 기다리던 내 차례가 올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리니 오전에 창고를 떠났던 내 친구들이 약간 걱정이 됩니다. 눈길에 사고라도 나면 빙판길에 뒹굴지도 모르니까요. 갑자기 두려워집니다. 바깥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나의 할 일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멀리 창고에 있던 아저씨가 물건을 싣는 기사 아저씨에게 얘기합니다.

 "오늘 물건들이 잘 나가네. 여기 이 큰 상자들도 모두 나가니 이따 모두 실어주세요."

 이제 드디어 내가 바깥나들이를 할 차례인가 봅니다. 나는 속으로 `야호!`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몸 어느 한 곳도 물에 젖지 않게 하고 빳빳하게 잘 지켜온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볼품없는 종이상자지만 훌륭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꿈들을 상상하는 동안 나는 트럭으로 옮겨져 커다란 장난감 창고에 다다랐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입니다. 창고 안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장난감이 종류별로 쌓여 있습니다. 블록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에서부터 인형, 그리고 작은 악기들이 창고에 꽉 차 있어서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담을 만한 큰 장난감이 있을까 하며 창고 안을 쭉 둘러보니 나한테 꼭 맞는 장난감이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집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인데 어른 키에 가까울 만큼 덩치가 컸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집 모양 장난감에게 인사를 먼저 건넸습니다.

 "안녕! 나 오늘 여기 새로 도착한 종이상자야. 내가 덩치가 가장 커서 아마 너를 담게 될 것 같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습니다.

 "그래? 나는 비싸고 귀하신 몸이라 너에게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집 모양 장난감은 나를 비웃으며 얘기했습니다. "나는 너보다 더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길 거야. 너처럼 누렇고 못생긴 종이상자에게는 가지 않을 거라고."

 집 모양 장난감의 말에 갑자기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나든 좋은 상자가 되어 잘 지켜줄 자신이 있는데 못생긴 종이상자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니야. 나는 멋진 종이상자가 맞아. 세상에 나보다 더 튼튼하고 빳빳한 상자는 없단 말이야. 두고 보라구.` 나는 다시 힘을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내 앞에 있던 상자들은 하나둘씩 갖가지 장난감들을 담고 주인들을 만나러 떠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쯤 여기를 떠나게 될까 몹시도 궁금해집니다. 첫날에 인사를 나눈 집 모양 장난감하고는 아직도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 모양 장난감은 정말 나보다 더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기게 될까요? 아무튼 나는 어떤 장난감을 담게 되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장난감 선물을 받게 될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니까 말입니다.

   어제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창고 안은 종이상자끼리 서로 기대고 있어도 참 춥습니다. 작은 장난감들이 수없이 창고를 떠나고 있는 순간에도 집 모양 장난감들은 지금까지 하나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가격이 너무 비싸 사람들이 잘 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집 모양 장난감이 참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이때 앞을 지나가는 창고지기 아저씨의 혼잣말이 내 귀에 들려왔습니다.

 `이제야 집 모양 장난감이 하나 팔려나가는구나. 장난감 덩치가 너무 커서 창고가 비좁았는데 잘 됐어.`

 집 모양 장난감에게도 이제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아저씨는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집 모양 장난감 쪽으로 가져갑니다. 집 모양 장난감이 날 보고 뭐라고 말할지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아저씨는 집 모양 장난감에 먼저 스티로폼 옷을 단단히 입힌 후 나를 씌우고 나일론 끈으로 야무지게 묶었습니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됩니다. 집 모양 장난감은 이제야 굳게 닫혔던 입을 열고 나에게 한 마디 건넵니다.

 "결국 내가 너에게 담기는구나. 고급스러운 내가 왜 이렇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아무튼 네가 나를 맡았으니 도착지까지 절대 내 몸이 부서지지 않게 잘 보호해줬으면 해."

 "알았어. 나만 믿어. 너를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

 기다렸던 일들이 눈앞에 일어나니 너무 신기하고 마냥 좋기만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출발하게 된 것도 참 행운입니다.

 트럭에 올라 고속도로에 나가니 선물들을 싣고 달리는 택배회사의 트럭들이 넘쳐납니다. 모두가 새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인 모양입니다. 나처럼 다른 상자들도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합니다. 선



가톨릭평화신문  201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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