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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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병자의 날 특집] 어느 원목사제의 하루

“기도요? 고통 밝히는 희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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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표 신부가 입원 중인 환우를 방문해 환자의 쾌유를 위해 안수하고 있다.
 
▶ 홍상표 신부와 신자들이 매주 금요일 열리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환우 방문·기도모임 등 바쁜 일상
하루 30~40명 환자·가족들 만나
기도 주고 받으며 위로·희망 전해

때로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 되는 병원.

의사, 간호사, 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만큼 사연들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병이라는 고통과 싸우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하는 원목실 사람들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월 11일 세계병자의 날을 맞아 환자들과 늘 함께하며 그들의 눈물이 되고 웃음이 돼주는 ‘원목사제’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5층에 위치한 원목사제 홍상표 신부(서울대병원 원목실장) 집무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오전 8시 교직원과 의사들의 성서모임이 끝난 뒤 모임 참석자들과 홍신부가 성경말씀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내용은 ‘생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편안해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것이 과학적으로 저산소증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결과가 있는데 이것은 신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 의학박사가 질문하자 홍신부는 “그런 증세까지도 하느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고려하신 게 아닐까요?”라며 재치 있는 답을 내놓는다.

오전 10시 10분

성서모임이 끝났다. 홍신부는 종종걸음으로 병원 지하에 있는 원목실로 향한다. 중환자실은 오전 10시부터 30분간만 면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원목실 수녀에게 중환자 명단을 받아들자마자 다시 잰걸음을 걷는다. 잠깐이라도 환자들을 보고 그들에게 기도로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이 홍신부의 생각이다.

응급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사목의 시작이다. 재빠르게 마스크를 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면회가 시작된 지 10분이 지나서 과연 5개 병동을 다 돌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 사이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환자와 보호자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보호자는 원목사제를 보자마자 상태가 조금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홍신부는 그런 보호자의 손을 꼭 잡아주며 진심어린 위로와 기도를 전한다.

오전 11시

중환자실 면회를 끝내고 원목실로 돌아왔다. 매주 금요일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날. 미사시간이 다 돼가자 신자들로 원목실이 꽉 찼다. 미사가 끝나고 홍신부는 일일이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좋아진 이도 있고 나빠진 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홍신부는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이것이 원목사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오후 1~5시

오전 내내 한 번도 앉을 새 없이 바쁘게 돌아다닌 홍신부는 점심시간이 지나자 겨우 한숨을 돌린다. 원목실에서 성서모임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하는 수녀, 간호사, 봉사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눈다. 대부분 환자와 보호자들의 이야기다.

담소를 끝내고 홍신부가 자리를 나선다. 쌀쌀한 날씨에도 가디건 하나 달랑 걸치고 병원안팎을 돌아다니느라 추운 줄도 모른다. 오후 일정으로 가장 먼저 간 곳은 장례식장.

“한 할머니가 20년 동안 심장병으로 고생하셨는데 최근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신 분도 안타깝지만 할머니 곁에서 한결같이 보살펴온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열심히 보살피셨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환자들을 찾아 나선다. 원목사제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릴 환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관건물 12층부터 차례로 내려가며 환자들을 방문한다. 미로처럼 돼있는 병원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4년차 원목사제의 연륜이 묻어난다.

홍신부는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엄청날 것”이라며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고쳐줄 수 있지만 우리는 함께 있는 거 밖에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루 동안 만난 환자는 30~40명. 원목사제의 발이 아픈 만큼 그를 통해 새 삶에 대한 희망과 위안을 얻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지친 내색도 없다.

일과가 끝나고 저녁이 다가왔다. 약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은 아직도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항상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원목사제와 수녀, 봉사자가 함께하기에 더 이상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치열한 공간만은 아니다. 그곳은 주님이 따뜻한 사랑의 숨을 불어넣는 공동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인터뷰] 서울대병원 원목실장 홍상표 신부

“우리는 주님 안에 한 가족”

“원목사제는 환자와 보호자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원목사목 4년차에 접어든 홍상표 신부(서울대병원 원목실장)는 원목사제를 “경청해주는 이, 함께 있어 주는 이”라고 정의했다.

홍신부는 “처음에는 환자들에게 무엇인가를 해 줘야한다는 생각으로 사목에 임했는데 그거보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픔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교구 임상사목교육센터에서 실시하는 임상사목교육을 받고 스스로 꾸준히 공부한 끝에 그들과 진심으로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원목실은 사제 2명과 수녀 3명이 돌아가면서 환자들을 방문하고 있다. 홍신부는 죽음과 싸우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하면서도 “환자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함께 해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많지 않은 인력으로 큰 병원 안에서 많은 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홍신부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가족”이라며 “우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병자의 날을 맞아 홍신부는 “더 많은 신자들과 사제들이 병원사목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 기도해주면 좋겠다”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이지연 기자 virgomary@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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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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