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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과 자비

이 시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자비'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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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30일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교회가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의 유래를 살펴보고, 그리스도교와 함께 한국종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불교와 한국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유교는 자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자비를 강조하는 배경과 관점은 세 종교 모두 다르지만 자비는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모두의 최고 덕목이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4월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잘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를 성인품에 올리면서 특별히 하느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한 데 이어 그해 5월 교령을 통해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선포했다. 교황이 파우스티나 수녀를 새천년기 첫 성인으로 선포한 것은 파우스티나 수녀가 대변하는 자비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판단에서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년)는 수도 생활을 하는 동안 계시와 환시를 통해 특별한 은사들을 체험했고, 자신의 사명이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영적 체험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메시지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고, 이 일기는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하느님 자비 신심을 널리 전파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한 것은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축일로 지내도록 당부한 데서 유래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년)을 통해 "사회가 인간다워지려면 정의만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랑을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어느 시대에나 그렇지만 특히 이 현대에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선포하고 생활에 옮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14항)고 자비를 실천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자비(慈悲)는 그리스도교의 첫번째 계명인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에도 다시 한번 더 사랑을, 자비를 부각시킨 것은 이 시대가 그만큼 하느님과 인간의 자비를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자비


 사실 자비는 그리스도교에 앞서 불교를 통해 우리와 친숙해진 개념이다. 자비는 불교 수행의 근본 정신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의 마음을 가리킨다. 자(慈)는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는 의미이고, 비(悲)는 남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뜻이다. 두 단어가 합쳐져 특별히 불교적 사랑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무아(無我) 사상이다. 영원불변하는 `나`라는 자아가 없다는 사상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나에게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의미의 가르침을 능동적으로 바꾼 것이 타인에 대한 헌신인 자비이다. 이때 자비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진리를 깨달을 때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꾸준히 자비를 실천할 때 `무아`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 깨달음에 이른 자는 나와 이웃을 하나로 여김으로써 완전한 자비를 실천하는 부처가 될 수 있다.

 불교를 초기 소승불교와 후기 대승불교로 나눌 때 자비를 특별히 강조하는 쪽은 대승불교이다. 불교가 자신의 깨달음(自利)과 타인에 대한 헌신(利他)을 엄격하게 구분하지는 않지만 소승불교가 속세를 떠나 개인의 깨달음에 치중한다면 대승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현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중생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쪽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살은 이와 같은 자리와 이타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다. 대승불교가 등장한 이후 대부분의 경전에는 보살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개인적 깨달음의 종교로 알고 있는 불교 역시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생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비가 불교의 최고 덕목으로 알려지게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 불교는 대승불교이다.

 

 ▨유교의 인(仁)


 유교 경전에 자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자비는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교에도 자비와 상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仁)이다.

 인은 유교의 창시자 공자(孔子, BC 551~BC 479)의 핵심 사상이다.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많다. 초월자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어서다. 그러나 공자의 말과 행적을 담은 「논어」(論語)에는 공자가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천(天)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물론 그리스도교에서와 같이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초월자는 아니다. 유교가 말하는 `하늘의 뜻`(天命)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것이다. 유교는 이 본성을 개발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고, 본성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중심 덕목을 `인`으로 봤다. 유교의 이상은 인을 실천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데 있다. 공자가 인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살펴보자.

 △인이 무엇인지 물으니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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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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