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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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실수는 인간의 일이다’ / 윤민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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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신학교 중1 때부터 라틴어를 배웠다. 여러 라틴어 격언 중에서 세네카가 했다는 “실수는 인간의 일이다”(Errare humanum est)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이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지체인 인간은 모두 나약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존재이다. 그런 구성원들의 실수를 교회는 떠안고 가야 한다. 쓸데없이 목에 힘주지 말고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살아갈 때 더욱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

지난 두 주 동안 ‘밀알 하나’라는 이 난을 통해서 「만천유고」나 「성교요지」 등의 사기극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우리 교회를 짚어 보았다. 그것은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문제였다. 역사에 대한 어떤 자료가 새롭게 세상에 나오면 그 진위부터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이 났을 때 비로소 거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하지만 「만천유고」의 경우는 기본적인 사료비판 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천주교회사 자료로 인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새로운 초기 한국천주교회 역사를 만들어갔다.

새로운 역사만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이벽의 위상도 급격하게 치솟았다. 「성교요지」와 같은 대단한 걸작과 ‘천주공경가’를 지었다며 이벽은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자가 됐고, 심지어 또 다른 사기작인 「이벽전」에 나오는 표현대로 “위대한 도사이자 종교 창시의 큰 스승”으로 선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성조(聖祖)’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됐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마침내 이벽의 시복과 시성을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에 이르렀다.

달레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이벽이 부친의 심한 반대를 받던 중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벽은 그토록 심오한 영성이 깃들어져 있는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를 지은 대단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면 그 죽음이 어떤 것이든 간에 무조건 순교로 봐야 하며, 그를 성인으로 공경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그런 대단한 작품을 지은 이벽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것은 분명 자연사일리가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독살당한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벽을 독살한 인물은 그 형수나 제수일 것이라며 애꿎은 사람들을 근거도 없이 살인자로 몰았다.

이렇게 그동안 거짓되고 황당한 자료들을 근거로 초기 한국천주교회 역사를 끝없이 부풀리고 왜곡했으며 이벽을 비롯한 초기 한국천주교 인물들의 행적과 영성이 과대포장 됐다. 거듭 말하지만 이제는 거짓 사료를 근거로 만들어진 잘못된 초기 한국천주교회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초기 교회 역사는 왜곡하지 않아도 자랑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거짓된 자료들을 근거로 거짓된 역사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고 초기 교회 순교자들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머리를 숙이고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밀알 하나’를 심어야 할 때다.


윤민구 신부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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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6-2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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