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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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교회의 전원 전투요원화, 이대로 괜찮은가” / 박유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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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본당 주임신부 시절 이야기다.

농어촌 지역으로 순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교적상 신자 수가 1000명도 되지 않는 교회였기에 사람의 소중함을 더더욱 느끼고 배울 수 있던 곳이었다.

새로이 전입 왔다고, 또는 누구의 축일이라고 단체와의 만남 겸 식사자리를 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렇게 여기 저기 초대받아 식사를 다니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초대받은 자리가 어떤 모임 자리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본당의 사람 수가 워낙 적다보니 이 모임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도, 저 모임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도 같을 때가 많았다. 성가대 회식이라고 가서 보고, 레지오 회식이라고 가보니 또 보고, 소공동체 단합자리에 가서 또 만나게 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 것이다.

이같이 단체 이름만 바뀌고 그 단체의 구성원이 거의 비슷한 사람들로 이뤄지는 현상은 비단 작은 시골 본당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000명 중반대 신자 수를 지녔던 나의 두 번째 사목지 본당에서도 이 같은 상황과 종종 마주칠 수 있었으며, 보좌 시절 거쳐 갔던 본당이며 출신본당이며 교구 선후배 신부님들을 통해 듣게 되는 주변 본당들 모두 어딜 가나 비슷한 상황을 피해갈 수 없나보다.

군생활 시절 작은 직할대의 교육 프로그램 중 ‘전원 전투요원화‘ 교육이란 것이 있었다. 각자 고유한 보직이 있으면서도 부대전체에 요구되는 임무 때문에 자기 보직 외에도 다른 임무를 겸해서 수행하던 것으로 대략 이해하면 된다.

위에 언급한 교회의 해프닝을 떠올리면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전원 전투요원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이없어 실소를 금치 못하곤 한다. 비유의 한계가 있겠지만, 이 같은 신앙 활동의 양태가 계속된다면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점차 에너지가 고갈되기 딱 좋을 것이다. 또 꼭두각시 춤사위 마냥 무언가 계속 행하고는 있는데 사실 이도저도 아니게 될 우려도 도사린다.

문제 해결에 있어 제일 좋은 것은 구성 인원이 늘어서 전체의 활동 영역과 역할을 나누어 받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단체 활동의 구성 시스템과 역할 분배에 대해 공동체 전체가 하나 되어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인적 네트워크 구성에 대한 양심적 성찰 또한 필요하다. 단순히 성당에 나오는 사람이 적어서인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친분 위주의 관계형성인가? 신앙 활동 내지 단체 활동에 있어 나의 목적과 기대는 진정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유현 신부
(수원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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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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