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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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당 주보성인] 김제준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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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길을 걷는 이들도 훌륭하지만, 그 사제에게 신앙을 물려준 부모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하지 않을까. 제1대리구 삼가동본당의 주보성인 김제준(이냐시오) 성인은 한국교회의 첫 방인사제 김대건 성인에게 굳건한 신앙을 물려둔 아버지이자, 회장직분을 수행하며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성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을 익히고 실천해온 신심이 두터운 신자였다. 성인의 할아버지인 김진후(비오) 복자도, 작은 아버지인 김종한(안드레아) 복자도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순교자다. 성인은 고 우르술라와 결혼해 아들 김대건을 낳았는데, 성인 역시 아들에게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물려줬다.

성인은 아들 김대건 성인이 신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해가 극심하던 당시 아들을 사제로 양성하기 위해 외국에 보낸 일은 그 자체로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동시에 아들의 죽음도 각오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인은 기꺼이 아들을 마카오 유학길로 보냈다.

성인은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내포 놀매로, 내포에서 용인 한덕골로, 또 은이로 가족과 함께 전전하며 생활했다. 은이에 정착한 성인은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회장직을 수행했다. 이런 성인의 굳은 믿음과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김대건 성인의 신학생 선발에도 영향을 줬다.

1839년 기해박해가 닥치자 포졸들이 성인의 집으로 몰려들어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기운이 장사였던 성인은 얼마든지 포졸을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성인은 조금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체포됐다고 한다.

성인이 각오했던 대로 아들이 유학을 떠난 사실이 드러나자 성인은 국사범으로 취급됐다. 일반적인 형벌보다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았기에 이를 견디기 어려웠던 성인은 배교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그러나 옥중에서 함께하던 다른 신자들의 독려로 용기를 되찾고 다시 형조에 출두해 배교한 사실을 취소하고 신앙을 증거했다.

성인은 박해자들 앞에서 “서양인을 데려온 것과 자식을 외국에 보낸 것은 모두 천주를 공경해 받들려는 까닭”이라고 증언했다. 결국 성인은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이때 그의 나이는 44세로, 순교 당시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은 김대건 성인은 필리핀 롤롬보이에 머물며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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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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