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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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공동체성의 회복 / 박유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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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로 지내다보면 계절을 의식하게 되는 때가 있다. 한겨울의 추위와 한여름의 더위를 이겨내고는 하늘로 가는 어르신들이 많은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철과 가을철은 본당에 장례가 많아 분주해진다.

교회에 있어 장례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준비하는 일들 중에 하나다. 그런데 장례와 관련해 일을 준비하다 보면 사제로서 답답함을 금치 못할 일이 종종 생긴다.

유족 측이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중 하나는, 성사성은 무시하고 단순 사회적 일처리로 접근하고 해결하는 모습이다. 물론 자녀들이 장기 냉담 중이거나 비신자일 경우 가톨릭 전례와 성사, 신심에 대해 문외한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을 생각하며 교회의 도움을 먼저 요청한 입장에서 ‘나는 참견 안 할 터이니 빈소 와서 너네 할 것 하고 가라’, ‘지난 밤 기도하시던 거 보니 길던데 장지로 가는 날 아침 시간 촉박하니 안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사정 봐서 짧게 끝내 줄 수는 없는가?’ 라는 자세는 무엇을 위해 가톨릭의 전통에 따라 장례를 치르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장례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해 물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평소 고인과 가까웠던 친구나 지인들이 방문하기 편한 곳이 아니라 자녀들이 편한 곳으로 장례식장이 정해진 것을 느낄 때다. 부모님이 자녀들과 따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에 이 같은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데, 때론 자녀들이 장례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할 때가 있다. 장례미사를 드릴 수도 없는 병원 환경에 빈소를 차려 놓고서 출관하는 날엔 일정상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릴 수는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이쯤 되면 교회가 그저 상조회사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장례미사 예식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고별식에 있다. 구 예식서의 사도예절을 고별식으로 바꾼 것에는 교회가 신앙 안에서 공동체적 떠나보냄-작별의 의미에 보다 무게를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일반적 그림이 된 오늘날 교회의 장례에서 유족들은 자기네들만의 가족행사로만 생각하는지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걸 번거로워하고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적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공동체성을 배제하고서 공동체적 예식을 스스럼없이 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편의와 효용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본래의 중요한 것은 놓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이 비일비재한 건 일단 현 사회에서도 공동체적 연대보다 개인 중심으로 바뀐 영향도 있을 것이다. 교회 또한 공동체성에 도전을 받고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오늘날 신앙의 효용에 무게 추를 둔 개인의 접근과 더불어 성사와 전례예식의 의미에 대한 무지 확산을 교회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평소에 교육하는 수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신자 재교육이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세례인구 수 증감에 쫓겨 세례 준비 때 봐주기 식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에 교회가 살아남으려면 공동체성을 먼저 다져야 한다. 오늘도 교회는 부실한 공동체성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유현 신부
(수원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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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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