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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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청소년·청년이 가볼만한 성지] (3·끝) 은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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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열중하며 숨 돌릴 틈 없이 지난 6개월을 보냈던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잠깐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2019년의 남은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이 시기. 청소년과 청년들이 신앙을 더욱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신앙의 못자리를 살펴본다.

■ 15살 소년 김대건의 신앙이 시작된 ‘은이’

한여름 뙤약볕을 머금고 핀 하얀 개망초. 은이성지를 바라보고 있는 산 중턱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 주변은 하얀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수없이 걸었을 길. 박해의 위협 속에 지치고, 고단했을 김대건 신부에게 길 곳곳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위로가 돼줬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이성지(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는 김대건 신부의 땀과 신앙의 흔적을 머금은 채 신자들을 맞이한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청도 솔뫼(현재 충남 당진군 우감면 송산리)에서 김제준과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인 김운조가 1784년 입교한 이후 대대로 천주교 신앙을 이어가며 여러 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가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년 김대건은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일 당시 솔뫼에 터를 잡았던 김대건 일가는 증조부가 1814년 순교하자 박해를 피해 1827년 서울 청파로 이주했다가 경기도 용인 한덕동으로 이주했다. 얼마 후 다시 골배마실에 정착하면서 은이공소와 인연을 맺게 된다.

특히 15살이었던 김대건 신부가 세례를 받았던 이곳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신앙적 메시지를 전한다. 1836년 1월 13일 프랑스 선교사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가 그해 4월경 은이마을을 방문해 당시 15세인 소년 김대건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그해 12월 3일 중국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 신학교로 유학을 떠난 소년 김대건은 8년 뒤인 1844년 12월 초에 최양업과 함께 만주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이후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하이 인근의 진자샹(金家巷)성당에서 제3대 조선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됐다.

강경 황산을 통해 귀국한 김대건 신부는 11월경부터 1846년 부활대축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은이공소에서 기거하면서 서울과 용인 일대 교우들을 사목했다.

이곳에서 미리내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험한 고개 셋이 있는데, 이 고개는 김대건 신부 생전에는 걸어서 넘나들던 사목활동 행로였고, 순교 후에는 그의 유해가 옮겨진 경로가 됐다. 예부터 교우들은 이 고개를 신덕고개(은이 고개), 망덕고개(해실이 고개), 애덕고개(오두재 고개)라고 부르며, 지금껏 도보 순례를 하면서 그의 고귀한 순교 신앙 정신을 기리고 있다.

■ 한국 최초의 신부가 서품된 진자샹성당, 은이성지에 복원

사제관을 포함해 총 세 개의 건물이 전부지만, 은이성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신앙적 체험은 그 어느 곳보다 다채롭다. 은이성지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하얀 건물. 아름드리 소나무가 양옆을 지키고 있는 이 건물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상하이 진자샹성당을 복원한 것이다. 2001년 상하이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성당이 철거되자 교구는 이를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김정신 교수(스테파노·단국대 건축학과)를 필두로 건축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실측한 도면을 바탕으로 2016년 9월 성당을 복원했다.

성전의 문을 열자 진한 나무내음이 새어나온다. 중국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성당은 보기에도 이색적이지만 그 의미도 특별하다. 성전 앞에 설치된 기둥 4개와 대들보 2개, 동자주 1개는 진자샹성당 철거부재를 그대로 가져와 역사적 의미를 살렸다. 제대 옆에 놓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함은 은이성지를 찾는 신자들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하기를 청한다.

성당을 나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김대건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발자취를 훑어볼 수 있는 패널과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으며, 교회사 자료와 유물,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성상화 및 성상조각도 관람할 수 있다. 사전에 예약을 하면 은이성지 전담 이상훈 신부의 해설을 들으며 기념관을 관람할 수 있다.

기념관을 모두 둘러본 뒤, 문을 나서려는 순간 김대건 신부가 은이에서 남긴 마지막 말씀이 발길을 붙잡는다.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기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김대건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170여년이 지났지만, 신앙을 버리라는 유혹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신앙의 길을 찾지 못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은이성지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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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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