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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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당 주보성인]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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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선교를 향한 선교사들의 열망도 컸지만, 무엇보다 우리 신자들이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제2대리구 광남동본당 주보성인인 유진길(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선교사 영입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성인은 1791년 대대로 벼슬을 지내던 유명한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아 총명하기로 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성인은 다른 지식보다도 인간과 세상의기원 및 종말을 분명히 알고자 노력했다. 이를 탐구하기 위해 불교와 도교를 10년 이상 연구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하면서도 기뻐한다는 소문을 듣고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천주교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성인은 천주교 교리를 배울 길이 없었다. 이어진 박해로 신자들은 자신이 신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았고, 천주교 서적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은 자신의 집 장롱에 바른 종이에 각혼(覺魂), 생혼(生魂), 영혼(靈魂)이라는 글자가 적힌 것을 발견했다. 성인은 천주교 교리가 담긴 책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종이를 떼서 모았고, 그 책이 「천주실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천주실의」의 일부분으로 독학을 했지만, 일부분만으로는 성인이 원하던 진리를 알 수 없었다. 성인은 마침내 홍 암브로시오를 만나 교리를 들을 수 있었고, 또 다른 책을 얻어 신앙의 진리를 깨닫고 믿게 됐다.

성인은 당시 신자들이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그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조정의 역관이었던 성인은 의심을 받지 않고 중국을 왕래하며 성직자를 영입하는데 유리했다. 1824년 사신의 역관으로 중국 베이징에 간 성인은 베이징교구의 주교와 신부를 만나고 성사를 받았다. 또 조선 신자들의 사정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성인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파견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성인은 정하상 등의 신자들과 공동으로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조선 신자들의 실정과 선교사 파견을 간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편지는 1831년 9월 9일자로 조선대목구가 설정되는 계기가 됐다. 또 이어서 선교사들도 입국하게 됐다. 성인은 본인 역시 열심한 신자로 살았지만, 이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입교시켰다. 성인의 두 아들은 아버지를 본받아 신앙인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와 딸들은 끝내 입교시키지 못했다. 성인의 아들 유대철은 후에 순교해 아버지인 성인과 함께 시성됐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던 성인도 체포되고 말았다. 성인은 나라의 녹을 받는 자가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더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곤장으로 살이 헤지고 주뢰로 뼈가 어그러졌지만, 성인은 선교사들이 숨은 곳을 말하지 않았고, 다만 선교사들을 데려온 목적과 천주의 영광만을 이야기 했다. 결국 성인은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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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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