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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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하느님이 내려주신 선물, 포도 / 최인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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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포도.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어릴 때부터 포도를 참 좋아해 포도가 다 익기도 전에 따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우리 집 포도로는 모자라, 남의 집 포도까지 몰래 따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며 먹는 포도는 정말 ‘죽인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피곤할 때 먹는 포도는 지쳤던 하루를 위로해주는 귀한 선물이며, 그밖에도 건강과 미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만병통치약의 과일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학교에서 수확한 첫 포도를 맛보았습니다. 안성에 포도나무를 전래한 공안국 신부님이 안법학교 설립자이신데, 정작 우리 학교에는 포도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습니다. 아마 무슨 사연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직원과 상의하여, 두 그루의 포도나무를 예전에 있던 사제관 자리 뒤편 울타리 앞에 심었습니다. 그 두 그루에서 크지는 않았지만, 일곱 송이나 수확해 참으로 기뻤습니다. 첫 수확의 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았습니다.

안성에 최초로 포도나무를 심고, 처음 수확한 포도를 들고 하느님께 눈물의 감사 기도를 드리시는 공안국 신부님이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눠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폐병으로 극도로 야위고 창백한 얼굴에 꺼져가는 목소리의 청년’이 신부님께서 주시는 포도를 먹으며, 하느님 나라를 소개받고, 영혼의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공안국 신부 일기 참조).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교회 가르침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사람들에게 먹이고 가르치며, 아프고 힘든 이들을 위로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당신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이 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나는 좀 경직되고 딱딱한 방식으로 사제의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먹기 쉽고 알아듣기 편하게 전하고 나누어야 하는데, 덜 익은 과일을 급하게 먹이고 나누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설익은 과일을 급하게 먹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 좀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을 학교 교육목표로 정하고, 사람 가운데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더 좋은 건강·지성·인성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 자신부터 그렇지 못함이 부끄럽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나와는 다른, 공안국 신부님처럼 존경받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포도나무를 학교에 심을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학생들이 한 송이의 잘 익은 포도처럼 지치고 힘든 이, 아프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인생의 단맛을 선사하는 미래의 공안국 신부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최인각 신부
(안법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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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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