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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얼렁뚱땅 반주자에서 작곡가가 되기까지 /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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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여름, 어린이 신앙캠프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근처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려는데 반주자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생애 처음으로 오르간 반주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피아노를 꽤 잘 치는 어린이였지만, 오르간은 한 번도 연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생김새만 조금 비슷할 뿐, 소리 나는 방식이 피아노와 너무나 달라서 미사 내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제 반주는 분명 엉망진창이었을 것입니다. 미사를 마친 후, 학사님께서 제게 “오르간 정말 잘 치더라! 조금만 더 연습하면 멋진 반주자가 되겠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날 학사님의 말씀은 시무룩했던 제 마음에 큰 힘이 되어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수없이 틀리고, 실수하면서 반주자로 성장했습니다. 중고등부 반주자가 됐을 때는 초등부와 달라진 전례양식을 익히는 데 애를 먹었고, 특정 시기마다 노래 부르지 않는 복음환호송이나 대영광송의 전주를 연주하는 등 그야말로 얼렁뚱땅이었습니다. 주일 새벽반주를 맡았던 고3 때에는 실컷 늦잠을 자고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실수가 많았음에도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는 한 번도 혼내지 않으시고 늘 웃어주셨습니다.

실수투성이였던 저는 현직 작곡가가 되어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들과 수업을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내주는 숙제는 ‘틀려서 오기’입니다. 이 숙제는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짓을 많이 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모범 답안을 찾으려 애쓰거나 선생님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애를 쓰기보다는, 학생들이 저마다의 음악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제약 없이 발휘해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는 죄인 출신이거나 바리사이 출신인 사람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무조건 단죄하거나, 오답자로 낙인찍는 스승님은 아니셨습니다. 정답만을 콕 집어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시며 스스로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틀리거나 실패하기에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어린 날, 엉망진창인 제게서 음악적 가능성을 찾아주신 학사님, 잦은 실수에도 말없이 웃어주셨던 신부님과 수녀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실수와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저 또한 학생들의 오답을 찾기보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려 애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손희정 크리스티나
제2대리구 중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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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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