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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얼렁뚱땅 반주자에서 작곡가가 되기까지 (4) /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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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의외로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처음 뵙는 분들께 제 직업을 소개하는 순간입니다.

일단 ‘작곡가’라는 직업 자체를 신기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르신들의 경우 대중음악 작곡가와 혼동하시거나, 트로트 한 곡 잘 써서 대박나길 기원한다며 제 전문분야와는 조금 벗어난 덕담을 해주시곤 합니다. 예전에는 대중음악 아니고 클래식이라며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최근에는 그냥 씨익 웃어 넘깁니다.

작곡가는 일반적인 시선에서 화려하고 흥미로운 직업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작곡가는 외로운 직업입니다. 수학문제를 풀 때처럼 막힐 때 누군가 대신 풀어주거나 답지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에, 창작 과정의 모든 고민과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작곡가로 살아가다보니 어느샌가 제 안에 독단적인 성향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당에서 봉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당의 청년 성가대와 밴드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의 전문가라는 이유로 중요한 결정권을 손에 쥐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홀로 결정하고 단원들은 끌려오는 부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런 의사결정과정이 당연해질수록 단원들은 주체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고, 저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살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전문가의 뜻대로 운영한 결과물은 대체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외로웠습니다. 결과물은 인정받을지라도, 과정은 공감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모여 활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사’를 아름답게 채우는 것 하나 뿐인데, 더 잘 해야 하고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그제야 제 교만함과 독단적인 태도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태어나 혼자 죽지만, 결코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 있지요. 이 당연한 이치를 저는 종종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이루어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쁜 일은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더욱 기쁘고, 슬픈 일은 함께 나누면 덜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삶 속에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리라 다짐해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 참조)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손희정 크리스티나
제2대리구 중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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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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