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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 채유호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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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지독하게도 듣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반항까지는 아니었지만, 꽤나 선생님들의 속을 썩이며 지냈기에 다양한 벌을 섭렵했습니다. 그런 제가 중학교에 들어와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고 살고 있으니,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앞서 학창시절 다양한 벌을 섭렵했다고 했는데, 그중 제일 귀찮고 하기 싫었던 것은 교내 청소였습니다. 차라리 체벌을 받는 게 짧고 굵게 끝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반대로 청소는 제대로 했는지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했고, 때로는 청소 상태가 불량해서 더 남아 청소를 이어가야만 했기에 피하고 싶은 벌 중 하나였습니다.

찬란했던 제 학창시절은 지금 교목신부로 살아가면서 학생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고를 치고, 때로는 격정의 과정을 보내는 친구들을 이해하고 교감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고뭉치 친구가 점점 철 드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내심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며, 그 안에서 교목신부의 존재 이유를 체험하곤 합니다.

얼마 전, 교목실에 두 친구가 커다란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왔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친구들에게 “뭘 잘못했니?”라고 물었고, 그 친구들은 “잘못한 게 아니라, 저희가 하고 싶어서 교내 쓰레기를 줍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뒤통수가 얼얼하게 한 대 맞은 듯 싶었습니다. 저의 과거로 인해 친구들을 편견과 선입견에 가득 차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합니다. 하나는 편‘견’이고, 다른 하나는 선입‘견’이라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는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속단하는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고 합니다.
친구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속단하고 실수한 저는 너무나 미안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그 친구들에게 간식을 한아름 안겨주었습니다.

학교에서 지내면서 저는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며, 때로는 학생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저 자신을 깨부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부지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됩니다. ‘신앙 안에서의 철부지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가 아닌,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상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짧은 묵상을 해봅니다.
저의 불찰로 인해 상처받았을 두 친구에게 이 기회를 통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채유호 시몬 신부
효명중·고등학교 교목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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