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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80장면] (30) 1975년 인성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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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1월 주교회의 인성회 전국사무국에서 교구인성회대표 등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 위원회를 개최 했을 당시 모습.
 
▶ 1975년 7월 6일자 가톨릭시보 1면
 
“대사회사업 활성화할 인성회 탄생”

“까리따스 새 規約 인준

6월 26일 CCK에서 열린 주교회의 임시총회는… 지학순 주교가 작성한 까리따스(仁成會) 명칭 개정안과 규약,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통과 시킨 후 지주교를 ‘인성회’ 총재로 선출하는 등 현안 문제를 의결했다.” (가톨릭시보 1975년 7월 6일자 1면 중에서)

한국 카리타스의 부활

국내외의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을 전국 차원에서 총괄 협의하는 기구로서 한국 카리타스는 1975년 7월 6일 주교회의 총회 의결로 시작된 ‘인성회’로부터 시작됐다.

이 명칭은 그후 1991년 11월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됐다.

가톨릭교회는 본래 그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로서 사회사업을 운영하고 유지해왔다. 한국 교회 역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 사업 활동을 전개해왔는데, 한국 전쟁 후 ‘한국 카리타스’를 설립했으나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함에 따라 70년대 초부터 그 부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4년 11월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는 카리타스의 부활을 원칙적으로 결정했고, 이듬해인 1975년 6월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는 이를 공식 인준함에 따라 ‘인성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대사회사업을 활성화하고 총괄적으로 협의하는 기구로서의 인성회를 활성화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 긴급 구호, 자선활동, 복지 사업, 개발 활동, 기타 사회 운동과 관련된 의식계발 등의 활동을 하게 됐다.

1978년부터는 각 교구에 교구 인성회의 설립을 촉구했고, 다양한 교회 내의 운동 단체들을 조직화함으로써 다양한 복지 기구들을 일관성 있게 조직해나갔다.

특히 교구별로 설립된 사회복지회들은 전체 사목활동과 교회의 대사회 활동이 유기적인 관련을 맺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직접 대북사업에 참여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내외의 모든 사회 사업을 총괄하는데, 국내에서는 각종 교육과 모금운동, 각 복지활동 분야의 활동 지원, 긴급 재해 구호 활동, 각종 연수와 피정 및 유관 연구 조사 및 자료 발간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 활동으로는 우선 긴급 구호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해외 원조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위원회는 한국교회의 성장과 함께 1992년 10월 공식적으로 주교회의로부터 해외 원조 사업을 위임받으면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받는 교회에 머물러 있던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왕성한 해외 원조 활동을 펼치는 지역교회로 성장했다.

지난 해 10월말에는 지금까지 대북 지원 사업을 맡아온 국제 카리타스로부터 대북 사업 추진 전권을 위임받음으로써 앞으로는 국제 카리타스에 가입한 162개국 가톨릭 교회를 대표해서 북한 지원 사업 전반을 온전하게 책임지게 됐다.

사회복지회는 우선 위원장 주교와 총무 신부, 전국위원 신부들로 구성되는 전국 협의회, 각 교구 사회복지회들, 그리고 9개 복지 분야별 전국협의회들로 구성되며 위원회 사무국을 두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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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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