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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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고쳐주기] 3. 경기 김포 윤병수 할머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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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할머니와 증손녀가 함께 겨울을 나던 골방(사진 왼쪽)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벽지와 바닥 등 깔끔하게 단장된 새 방 벽에 증손녀 수인이의 어릴적 사진을 담은 예쁜 액자가 걸려 있다.
 
“어쩜 좋아, 신부님 방 보다 더 좋네”

“가톨릭신문 사장 신부님 성함과 기자님들 이름, 그리고 공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의 이름을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모두 여기에 적어 줘.”

공사를 마치고 새 집으로 이사하는 날. 윤병수(카타리나.81.인천교구 대곶본당) 할머니가 하얀 종이 한 장과 볼펜을 손에 쥐어주었다.

집을 ‘확’ 변하게 해준 은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매일 기도를 바치겠다고 했다. “빨리 이름을 모두 쓰라니깐~.” 그 기도가 송구스러워, 쭈뼛거리는 기자에게 할머니의 독촉은 계속됐다.

“할머니, 저희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남이 아니라, 할머니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세요. 그동안 할머니 자신을 위해선 기도하신 일이 별로 없으시잖아요.”

할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좋은 집을 선물로 주셨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받을 상이 없어. 어서 빨리 여기다 이름들을 적어 달라니깐~.” 강요(?)에 밀려 결국에는 작은 종이에 이름을 가득히 적었다. 그 종이를 할머니는 소중한 물건 다루듯 접어 품에 넣었다.

할머니는 집 구석구석에 일일이 손길을 주었다. 방바닥과 벽면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새로 놓인 싱크대를 쓰다듬고, 출입문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증손녀 수인이는 뭐가 좋은지 계속 거실로 방으로 뛰어다닌다.

할머니는 이제 옷을 세 겹이나 껴 입은 채로 겨울 밤 추위를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수인이도 이제는 따뜻한 방에서 공부할 수 있다. 방이 넓어져 책상도 놓을 수 있다. 대곶본당 오병수 주임신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이 이제는 본당 사제관 보다 더 낫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좋다.”

달라진 것들

쉽지 않은 공사였다. 기존 난방 시설이 동파돼, 방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 바닥을 모두 뜯어내 난방 설비를 한 다음, 시멘트로 미장 공사를 했다. 문제는 바닥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방바닥이 마르지 않으면 창문 설비 및 도배, 전기 공사도 함께 늦춰지는 상황. 공사 일정에 맞추기 위해 온풍기와 선풍기를 총동원해 바닥을 말렸다. 다행히 공사기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쉽게 방바닥을 말릴 수 있었다.

낡아서 찬바람을 막지 못하는 출입문도 바꾸었다. 출입문에 창문을 내서 햇빛을 최대한 방안으로 들이기로 했고, 비가 새는 천정도 전면 보수했다. 단열 처리가 되어있지 않던 벽도 단열 시공,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했다. 당장 취사 도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할머니를 배려해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함께 제공했다. 낡은 벽지와 바닥 장판도 교체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전기 설비. 기존 시설이 낙후돼 화재의 위험이 높았다.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전기 관련 설비를 교체, 보수했다. 전등도 최신형으로 바꾸었다. 물이 나오지 않던 수도에서도 이제는 물이 콸콸 나온다. 화장실 바닥도 할머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 방지 타일로 손을 봤다.

새 집, 그 후

할머니는 집이 고쳐지는 그 날로 새집에 입주했다. 가재도구 등은 본당 신자들과 함께 천천히 마련키로 했다. 이불과 옷 등도 새로 구입할 예정이다. 수인이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새 집을 받았다며, 한창 꿈에 부풀어 있다. 할머니가 책상을 놓아주면,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번 공사에선 특히 많은 이들이 사랑의 집 짓기 사업에 동참했다. 본당의 한 사목위원이 기름보일러를 무상 제공했고, 한 독자가 뜻을 함께 하겠다며 벽지를 기증했다. 대곶본당 오병수 주임신부는 공사를 마치는 날, 본당에서 직접 십자가를 가져와 벽에 걸어주었다.

공사 시작단계에서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동참한 오병수 신부는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한다면 더 많은 이웃에게 이 혜택이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많은 이들이 이 사업에 동참해 ‘나 만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사 기간 내내 인근 여관에 기거하며, 직접 공사를 총괄 지휘한 엠에이디종합건설 이원준 이사는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큰 결심’이 아닌, ‘작은 관심’만으로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며 “앞으로 이 나눔의 행복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새 집 입주한 윤할머니

“이 은혜 어떻게 갚을지…”

“이 은혜를 모두 어떻게 갚아야 할지.”

윤할머니는 새 집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착한 일 한 것도 별로 없는데…. 평생 받아야 할 상을 모두 받았어.” 눈가에는 물기가 맺혔다.

지난해 12월의 화재는 할머니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평생 간직해온 사진첩도, 처녀 때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장신구들도 모두 불길 속에 사라졌다.

윤할머니가 가장 마음 아파한 것은 성경 필사노트. 힘없는 손으로 1년 넘게 기도하며 써내려간 필사 성경이 하루아침에 재로 변했다. 성경 필사를 해서 받은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의 축복장도 없어졌다. 하지만 ‘새 집’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밝았다.

“새 집이 생겼으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이 다시 생겼어.” 할머니가 ‘새 집에서 하겠다’는 것은 모두 신앙과 관련한 일들. 할머니는 우선 성경 필사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신앙생활을 새로 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써야지….”

기도도 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새 집이 없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할 때 마다 손이 얼어 힘들었지만 이제는 방안 공기가 따뜻해 기도하기에 좋아.” 옆에서 수인이가 “할머니 처럼, 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라고 말한다. 윤할머니는 증손녀를 꼭 끌어안았다.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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