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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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본 가톨릭신문 창간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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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환희의 우슴소리 집집이 가득 하리라”

"우리 조선 땅에도 교회 소식지 하나쯤 있어야하지 않겠나”

“알고 싶다 교회사정 전하고 싶다
신덕으로 무기 삼아 예수 말씀 앞세우니…”

최정복 윤창두 서정섭 김구정 이효상 최재복 6명 뭉쳐
촛불 아래 다진 결의 ‘천주교회보’ 창간으로 결실 맺어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붉은 불이 세 개나 동시에 깜박거린다. 편집국에서 온 메신저다. 분명 편집국장, 편집부장, 편집 담당자의 메시지일 게다.

원고 마감 시간 조금 넘겼다고, 세 명이 동시에 원고를 독촉해 댄다. 담배 입에 물고 신문사 건물 옥상에 오른다.

어느새 바람이 참 순해졌다. “휴우~” 담배 연기를 가슴에 깊이 넣었다 다시 토해낸다.

옥상 난간에 기대 세상을 본다. 모두들 참 바쁘다.

촛불 아래 타오른 ‘가톨릭’ 소식지

시간은 이미 신시(辛時, 오후 6시30분~7시30분)를 넘기고 있었다. ‘서둘렀어야 했는데….’

집 앞에서 벌어진 동네 후배들의 말다툼에 끼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네가 그르다” “네가 옳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라며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하는데 한시간을 넘겼다.

“자 이제. 화해하라구. 나중에 내가 술 한잔 살테니까. 한 동네 살면서 이래서 되겠나.”

제법 그럴싸한 훈계까지 하자, 다툰 이들이 마지못해 등 돌리고 뒤돌아 섰다.

윤창두는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이미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목 뒷덜미에 땀이 촉촉해져 올 무렵, 좁은 골목 막다른 곳 사립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윤창두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요셉이, 내가 왔네.”

툇마루에서 가부좌 틀고 촛불에 의지해 신문을 읽던 최정복이 윤창두를 맞기 위해 급히 일어섰다. 그 때문에 마루가 삐걱거렸다.

최정복은 윤창두 보다 나이가 10년 아래였지만 촛불 그림자 때문인지 몸은 두 배나 커 보였다. 최정복은 전등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이기도 했지만, “늘 기도하는 천주교 신앙인들에게는 촛불이 성정에 맞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목이 빠질 뻔 했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성격 닮아서, 오는 길에 용을 좀 썼네. 아는 아이들이 집 앞에서 다투길래 훈계 좀 했지.”

최정복이 대구의 각종 청년 단체 일에 관여하며 청년 신앙·사회 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었다. 최정복이 윤창두의 어깨를 툭 쳤다.

“누가 성 유스티노 신학교 일반교육 교사가 아니라고 그럽니까. 배명학교 교사와 교장까지 지내신 분이…. 나야 30대이니 그렇다고 쳐도, 형님은 나이가 40줄에 들어섰는데, 그런 아이들 싸움에 끼어 들면 체통이 서겠습니까.”

윤창두가 미안함을 감추려는 듯,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그 일은 어찌 되었나.”

몸은 어느새 최정복 바로 앞까지 당겨져 있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최 정복이 신문과 잡지 하나를 내보였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가톨릭 타임즈’와 ‘カトリツク’(가톨릭) 이었다. 윤창두가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거 좋네 좋와. 우리 조선에도 이런 것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최정복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カトリツク’(가톨릭)과 가톨릭 타임즈는 일본 교회 소식과 선교 현황, 사회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 복음 강론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윤창두의 눈은 일본 청년 신앙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기사에 한참동안 머물고 있었다.

“형님.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도 이제 신문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 소식을 신앙인들이 제대로 모른다고 해서야 말이 됩니까.

제 집안 일을 똑똑히 모름은 수치일 뿐 아니라 그 집을 더 흥왕케 할 방도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자네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이. 내 성심껏 힘쓰겠네.”

대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최정복의 6살 아래 동생 최재복이었다.

“자네 몸은 여전히 튼실 하구만.”

윤창두가 최재복의 손을 이끌고 옆자리에 앉혔다. 최재복은 남방 천주공교 청년회 회장인 형 최정복을 도와 체육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신문 만드는 일 때문에 모이셨군요.” 최재복이 윤창두가 들고 있던 신문을 뺏어들었다.

“그나저나 일제가 허락을 하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나도 그게 걱정이야.”

최정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제의 인쇄 매체 검열이 한층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있는 신문도 줄줄이 폐간시키는 판에 새로 신문을 낸다는 것이 쉬울리는 없었다. 윤창두가 최재복으로부터 다시 신문을 뺏어들며 말했다.

“신문사 사무실이야 현재 청년회 사무실로 하면되고, 일할 사람이야 인재들이 널려있어. 시대일보 기자 서정섭 스테파노와 신학교 다니다 나온 김구정 이냐시오, 또 동경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이효상 아길노도 있지 않는가. 헌데…. 신문 허가만 나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최정복이 초를 하나 더 꺼내와 심지에 불을 밝혔다.

“발행 허가 문제는 창두 형님이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대구대목구 부주교이자 계산동본당 주임신부님이신 베르모렐 신부님께 발행인과 편집 책임을 부탁해 보지요. 외국인이고 또 선교사이니까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할아버지 신부님이 허락하실까요.” 최재복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윤창두가 팔을 걷어 부치며 말했다.

“그 분이면 허락하실거야. 지금까지 청년들의 활동을 잘 이해해 주셨지 않는가. 아마 내가 부탁하면 적극 밀어 주실거네.”

최정복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그 문제는 형님만 믿겠습니다. 저는 편집방향과 보도 방침, 편집위원 선정 등 세부 사항을 준비하겠습니다.”

초가 하나 더 켜졌다.

이제 시작이다!

“최정복 회장님과 창두 형님, 재복 형님은 왜 이리 늦어. 매번 늦으신다니깐.”

출석 노트를 빤히 들여다 보던 청년회 서기 서정섭이 안경을 코 잔등 위로 바짝 밀어 올렸다. 윤창두와는 20살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평소 편한 친구 대하듯 했다. 윤창두도 그런 격의 없는 소탈한 성격의 서정섭을 좋아했다.

“시대일보 기자님, 신문에 대서 특필 하라구 ‘회장님과 윤창두 전교부장님 오늘도 지각하다’라구 말이야.” 김구정이 서정섭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이는 30을 넘겼지만 2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었다. 신학생으로 복사직까지 받았던 그는 8년전 전국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신학교 내에서 만세 운동을 주동한 인물이었다. 신학교내에서 만세를 외쳤으니 망정이지, 길거리에서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감옥에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약령시장 골목에서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죽거나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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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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