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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복음화의 구심점, 본당 - 전주교구 고산본당

신앙 전통 계승하며 지역 복음화 매진/ 산간벽지에서 애국계몽운동 위해 헌신/ 2009년 국내 첫 한옥성당 원형대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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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고산성당의 모습.

1994년, 전주교구 고산본당 공동체는 설립 100주년 기념성당을 봉헌하는 기쁨을 누렸다.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농촌 본당의 실정으로는 힘겨운 새 성당 건축을 신앙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하나로 이뤄낸 큰 성과였다. 이어 본당은 새로운 본당을 분리, 신설시키고 관할 공소 보수와 신자들의 재교육, 청소년들을 위한 신앙교육 등에 매진하며 지역 복음화의 구심점으로 든든히 자리하고 있다.

고산본당(주임 안봉환 신부)은 2011년 현재 교적상 신자수 1800여 명의 작은 본당이지만 그 내면에 뿌리내린 신앙의 깊이는 한국교회 전체가 주목할 만한 의미 깊은 터전이다. 현재의 본당이 재설립된 것은 1958년이지만, 그 모태는 되재본당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북도 고산지방은 지역적으로 북쪽의 다른 도에서 전라도로 들어오는 통문이었다. 신자들도 박해를 피해 우선 고산 땅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살 길을 찾아 전라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한 과정에서도 전라북도 지역에는 교우촌이 흥성했고, 그중 고산에 가장 많은 공소가 자리 잡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 일대 교우촌이 넓은바위, 천호, 차돌박이, 석장리, 되재 등 50여 곳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진다. 파리외방전교회 블랑 신부도 1877년부터 고산을 거점으로 전라도뿐 아니라 전국 각 공소를 방문하며 전교했다. 선교사들이 고산지방을 전교의 거점지로 정한 것은 이 지역 신자들의 신심을 높이 평가한 덕분이었다.

전주교구 내 본당 설립도 고산과 전주에서 가장 먼저 추진됐다. 무엇보다 고산지역은 뿌리깊은 교우들로 구성된 공소들이 많았다. 본당은 1891년 설립됐지만 터를 잡는 과정이 쉽잖아, 성당은 1894년 되재에 터를 잡고서야 마련됐다.

되재성당은 한국교회 안에서는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완공된 의미 깊은 성당이다.

되재에 세워진 성당 외형은 한식 가옥 지붕구조의 하나인 팔작 기와지붕의 한옥이었다. 성당 위치가 시골인 것을 고려, 한국인의 정서 및 생활문화와 동질감을 느끼고 환경친화적으로 짓기 위한 배려였다. 이러한 성당 건축은 한국 가옥의 전통양식을 성당 건축 양식에 수용한 일종의 토착화 노력으로 더욱 관심을 모았다. 공사에는 운주면에 있는 화엄사와 충남 은진에 있는 쌍계사에서 나온 목재도 적극 활용됐다. 게다가 당시 신축 공사에는 신자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본당 비에모 신부가 세금 수탈을 저지하는데 큰 힘이 된 덕분에 공사 협력뿐 아니라 개종의 바람까지 이는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동학농민전쟁 등 수많은 난관을 거쳐 성당이 완공되자 1896년 뮈텔 주교 방문을 맞춰 봉헌식을 거행했다. 전라도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주교가 공식방문한 것은 1896년이 처음이었으며, 주교의 발걸음이 처음 거친 곳도 바로 되재성당이었다.

고산 되재본당으로 불리던 이곳은 특히 산간벽지에서 육영사업을 펼친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이었다. 1906년에는 국어와 한문을 교육하는 학당 형식의 신성학교를 설립했으며, 1908년에는 4년제 태극계명 학교를 설립해 각종 신학문을 가르쳤다. 또 밤에는 노동야학교를 열고 직업교육을 통한 자립의 길을 열어줬을 뿐 아니라 토지를 수탈하려는 일제에 대응해 측량기술도 가르쳤다. 하지만 이후 수청리본당이 신설되고 나바위와 논산본당이 설립되자 선교의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가 되어 결국 1944년 반세기 역사의 막을 내렸다.

본당이 폐쇄됐어도 신앙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역 신자들과 당시 인근 공소들을 관할하던 삼례본당 주임 김영구 신부는 1954년 고산지방의 중심인 고산에 성당 신축을 추진했다. 전쟁 직후 먹고 살기조차 힘든 여건이었지만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당을 세워 되재와 수청 본당의 맥을 이은 고산본당이 본격적인 복음화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발전과 새로운 농업기술 발전 및 보급에 힘써왔다. 관할 천호공소의 순교자 유해 발굴 조사 작업과 성지 조성 및 피정의 집 설립 등에도 큰 힘을 실었다.

2009년에는 국내 최초의 한옥성당인 전주교구 되재성당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정면 9칸, 측면 5칸 한식 목구조에 홑처마 팔각지붕을 갖춘 모습이다. 성당 내부 중앙에는 나무판자벽을 설치해, 남녀 신자들이 서로를 볼 수 없도록 한 원형을 살렸다. 옛 구조가 신자들에게는 답답할 수 있으나,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취지로 다듬은 모습이었다.

고산성당 인근에는 천호성지와 피정의 집, 호남교회사연구소 등이 자리하고 있어 신앙 선조들의 숨결을 더욱 짙게 느끼게 한다. 성당을 거쳐 인근을 순례하며 신앙선조들의 뜻을 우리 안에 되새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 옛 되재성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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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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