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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평신도 - 순교자 박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오직 천주 공경하며 내 뒤를 따르게 하라”/ 병인박해 피해 진천 절골서 신앙생활/ 죽음 앞두고 자녀의 순명 각별히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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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박 프란치스코(위)와 오 마르가리타(아래) 부부의 묘
 

‘하느님의 종 순교자 124위’에는 성(姓)과 세례명 정도만 알 수 있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름은 물론 출생지와 출생연도, 천주교에 입교한 사정 등은 정확하지 않으나, 신앙을 알고부터 순교하기 전까지 그들이 행한 신앙의 실천과 순교신심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평신도의 표본이 된다.

무명의 순교자 가운데 함께 굳건한 신앙의 의지를 지킨 박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 혼인을 하고 충청도 청주에서 살던 이들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안전한 곳을 찾아 아들 4형제를 데리고 진천 절골(현 진천군 백곡면)로 이주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들 가족은 절골에서 2년여 동안 평온하게 생활하면서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지만 박해가 거세어지면서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됐고, 때맞춰 그해 9월 5일 경기도 죽산 포졸들이 신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절골로 들이닥친다.

프란치스코의 가족은 포졸들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산중으로 피신하던 도중 뿔뿔이 흩어지게 됐는데, 그 가운데 아내 마르가리타가 어린 자식을 업고 산에 숨어 있다가 발각돼 포졸들에게 많은 매를 맞아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프란치스코는 가족들의 사정이 궁금해져 동정을 살피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후 그 동네 한 비신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하지만 그 비신자는 밤중에 뒤로 빠져나가 프란치스코를 포졸들에게 밀고했으며, 곧 체포된 프란치스코는 아내와 함께 죽산으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프란치스코는 옥중생활을 하는 동안 동생 필립보와 맏아들 안토니오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절절한 당부가 적혀있었다.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이 편지는 집안에 남아있던 성물과 함께 박해 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부부는 어떠한 모진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으며, 1868년 9월 28일 죽산에서 함께 순교했으니, 당시 아내의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고 남편의 나이는 33세였다.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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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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