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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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돌 특집] 충주성모학교 시각장애 청소년 5명 "바오로의 해" 터키 성지순례 그 후

바오로 사도가 눈을 뜨듯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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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시각장애인 성지순례에 참가했던 중ㆍ고등학생 5명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이들은 "기회가 생기면 꼭 다시 성지순례를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2008년 성지순례 중 기념촬영을 하는 참가자들.
왼쪽부터 신재혁ㆍ권유진ㆍ유재준ㆍ김종석ㆍ진솔씨.
 
 
 "석양이 아름답다는데, 어떤 모습이에요?"

 진솔(로사, 21)씨는 4년 전 자신이 던진 질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터키에 도착해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골든 혼(금각만)을 지나갈 때였다고 했다.

 당시 골든 혼의 황금빛 석양이 버스 안을 붉게 물들이자 몇몇 사람이 황홀한 창밖 풍경에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진솔씨는 황금빛이 어떤 색인지 몰라 봉사자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뱃속에서 일곱 달 만에 나와 인큐베이터에서 시력을 잃은 진씨는 단 한 번도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최근 다시 만난 진씨는 "당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던 석양의 따사로움은 아직까지도 내 안 곳곳에 벅찬 감동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들뜬 목소리의 진씨가 들려주는 터키의 저녁 풍경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2008년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바오로의 해 기념사업으로 충주성모학교 시각장애 청소년 5명과 사도 바오로 발자취와 요한묵시록의 7대 교회를 찾아 터키 성지순례(6월 28일~7월 5일)를 했다. 도우미 왼쪽 팔을 잡고 걸으며 `마음의 눈`으로 성지를 보고 느낀 이들의 감동적 성지순례기가 4회(제978~982호)에 걸쳐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학생들과 함께 한 충주성모학교 교사 이영신(로사) 수녀는 "아이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신앙심도 깊어지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면서 "아이들이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을 인솔해 터키를 순례한 황인환(서울대교구 가톨릭건축사사무소 부소장) 신부는 "순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 은총을 깨달은 아이들 얼굴은 어느 때보다 빛나 보였다"며 "당시 감동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아름다운 삶을 사는 아이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그때 성지순례에 참가한 중ㆍ고생들은 이제 모두 어엿한 대학생이 돼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그새 4살을 더 먹은 나이만큼이나 그들 마음의 눈도 한결 영롱해진 듯 했다.

#마음의 눈을 뜬 은빛연어

 시인 안도현의 우화소설 「연어」에서 주인공 은빛연어가 맑은 눈 연어를 만나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대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까 네가 내 앞으로 지나갈 때 말이야. 그때 내 눈에 번쩍하는 빛이 보였거든."


 "빛이?"

 "틀림없이 봤어, 내 눈을 멀게 할 것처럼 강렬한 빛을."

 "그건 마음의 눈으로 나를 보았기 때문일 거야. 마음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이 아름답거든."

 유재준(요셉, 21)씨는 안부를 묻는 말에 「연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유씨는 "터키를 다녀온 후 `마음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이 아름답다`는 글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장애를 탓하며 방황한 그였다.

 "사실 해외성지순례를 한다는 말을 듣고 `불가능`이란 단어를 제일 먼저 떠올렸어요. 안 되는 일에 괜히 힘 빼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앞섰죠. 그런데 막상 시도해보니까 되더라고요."

 순례를 통해 `하면 된다`는 믿음를 갖게 됐다는 유씨. 자신감은 공부에 취미 없던 그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그 덕에 현재 유씨는 충남 천안 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유씨는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 이 학과를 선택했다"며 "졸업 후에는 점역사나 점역교정사 등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지 않고도 믿는 그들, 그래서 더 행복하다

 진솔씨는 터키 성지순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순례기간 내내 우리의 눈과 귀, 팔과 다리가 돼주셨던 기자님, 가이드 선생님, 수녀님 등을 보며 `나보다 못한 이`를 도우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어요. 그래서 제 꿈을 특수학교 교사로 정했어요. 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꿈이었어요."

 현재 진씨는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휴학 중이다. 입학 후 이를 악물고 공부해 과에서 5명에게만 주어지는 교직이수 자격을 얻은 진씨가 휴학을 선택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욕심이 너무 앞섰나봐요. 학업 스트레스 탓에 지난해 당뇨병이 와서 누워서 생활하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올해 1년 휴학하게 됐어요."

 하지만 병마도 `똑순이` 진씨의 학구열을 막지는 못했다. 휴학한 현재도 점역교정사 자격증 시험 등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친한 동기들이 있어 힘이 나요. 마음 맞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번화가에 나가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수다도 떨며 여느 대학생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재준이와도 종종 만나요."

 아프기 전에는 주량이 제법 셌다는 진씨는 "앞이 안 보이는데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일 것 같아 요즘은 자제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어 진씨는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훌륭한 꿈을 꾸게 도와주신 주님께 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지식 그 이상의 것을 전해주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권유진(레지나, 21, 부산대)씨도 4년 전 터키 성지순례가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지순례 후 자신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바로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떨쳐낸 것이다.

 "성지순례를 가기 전에는 `나는 천주교 신자니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지순례 동안 하느님을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하느님은 제가 착해야만 사랑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제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도 하느님은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성지순례 후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됐죠."

 성지순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권씨는 친구들에게 "왜 이렇게 더러워졌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 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던 `바른생활 소녀` 권씨가 청소도 잘 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는 게으른(?)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부담이 사라지자 행복은 저절로 따라왔다. 일이 잘 안 풀려도 하느님 뜻



가톨릭평화신문  201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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