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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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 <26>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6)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

한 식탁에서 같은 빵 나누며 ''주님 안에 하나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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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 안젤리코는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났음에도 늘 "진실한 재산은 조그만 만족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조그만 만족을 위해 단순하고 경건한 생활을 택한 그는 착하고 온화하고 조촐한 삶을 통해 속세의 관심에서 떨어져 살았다. 전기 작가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 번 그린 그림을 더 손질하거나 고치는 일 없이 그대로 뒀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손길이 자신의 붓을 인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서는 붓을 들지 않았으며,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그릴 때는 언제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고결한 삶과 더불어 구성과 색채 사용에 놀라운 감각이 동반된 회화기법 덕분에 후라 안젤리코는 빠른 속도로 유명해진다

 작품 : `제자들의 성찬`, 후라 안젤리코 작
             (1440년께,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미술관)

 ● 빛의 신비 5단 :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빵과 포도주, 친교, 영원함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성체성사

 소박한 방안에 모인 사람들은 성체를 받아 모실 준비를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한 손에 성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체를 직접 먹이신다.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제자들과 함께 기념하기 위함이다. 제자들의 손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한 손에서 가슴에 엇갈려 모은 손, 하늘을 향해 벌린 손까지 모두 경건한 자세다. 이 가운데 여덟 명은 긴 식탁 주위에 서 있고, 나머지 네 명은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다. 네 명이 앉았던 의자는 비어 있다.

 공간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안젤리코가 여덟 명만을 긴 식탁에 배치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8이란 숫자다. 숫자 8은 영원의 수로, `구원`과 `부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8이라는 수의 의미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노아의 가족 8명은 홍수의 심판에서 방주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창세 6,9-9,17). `모든 남자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창세 17,12). 할례를 통해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죄의 사함을 위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안식일(주간 마지막 날인 7일째인 날)이 지나고 주간 첫날(8일째)이 밝아올 무렵 부활하셨다(마태 28,1-7). 따라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우리의 덧없는 시간적 개념에 `영원`을 담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돼 신성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순간이다. 바로 여덟 번째 날, 부활한 날이다.
 
 #친교를 위한 식탁

 가운데에 예수께서 손수 나눠주시는 성체를 기다리는 제자들로 인해 방 안 공기는 긴장과 흥분이 감돈다. 화면 왼쪽에 성체를 이미 받아 모신 제자들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아직 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한 오른쪽 제자들은 초조한 기색이다. 영성체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는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 사랑을 함께 나누려 한다.

 여기에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포함된다. 안젤리코는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제자 사이에 유다를 그린다. 다른 제자들 얼굴 뒤에 노란색 후광이 그려진 것과 달리 유다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색처럼 어두운 색 후광이 그려진다. 예수를 수난의 길로 접어들게 한 유다지만, 그의 눈빛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하염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부터 급한 성격의 베드로, 배신을 앞둔 유다까지 다양한 유형이다. 예수는 식탁에 모인 여러 성품의 제자들-비록 불균등한 형태를 이루지만-에게 같은 잔에 같은 빵을 나누어 모두가 동일하며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신다. 아무런 조건 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서 모두는 같은 식탁에서 하나의 빵에서 비롯된 빵조각을 떼어 받아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목마르지 않을 물-생명의 양식

 식탁 위에는 어떤 음식도 놓여 있지 않다. 다만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채 윤곽선만 흐릿하게 보이는 컵 몇 개가 그려져 있다. 안젤리코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요한복음 6장 35절의 말씀처럼, 맛깔난 음식을 잘 차린 식탁보다 작은 성체를 나눠주는 예수의 움직임을 통해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창문 뒤쪽으로 연결된 오른쪽 회랑 중앙에는 두레박이 있는 우물이 보인다. 성찬례가 거행되있는 수도원의 작은 구석방은 오른쪽에 멀리 보이는 문을 통해 우물과 연결해 볼 수 있다. 모든 갈증을 없애주는 우물, 결코 목마르지 않을 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성체인 것이다.

 왼쪽에 나자렛의 성모 역시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 예수가 전해줄 생명의 양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최후의 만찬에서 여자, 즉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안젤리코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에서 중개자이자 영적 모친, 교회 어머니인 성모를 교회와 공동체 중심에 등장시켜 예수의 존재와 성체성사의 은총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주일마다 성찬의 식탁을 준비한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다. 우리는 예수의 온전히 내어주심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 하느님의 생명이 채워진다. `내어줌`과 `채워짐`의 신비가 성찬의 식탁에서 이뤄진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작품 : `그리스도의 변모`, 라파엘로 산치오 작
            (1516~20년, 목판에 유채, 바티칸 미술관, 일부)

  ● 빛의 신비 4단 :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변모, 영광, 빛




가톨릭평화신문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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