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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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34> 건축(7) 세례당과 세례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자리

씻음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특별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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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 세례대.
 
 
건축물과 특별히 관계가 깊은 세 성사는 성체성사, 고해성사, 세례성사다. 성체성사를 제외하면 건축적으로 가장 많은 고려를 해야 하는 성사가 세례성사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라면, 세례성사는 첫 번째 성사이며 근본적인 성사다. 물론 오늘날에는 세례당이나 세례반을 어디에 둬야 하고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률적인 규정은 없다. 그렇지만 세례당이나 세례반은 성당의 중요한 초점이며 도상(圖像)이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는 징표이며 교회 일원이 되는 문이다. 그래서 세례당이나 세례대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많이 놓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이 첫 세례성사였듯이 우리는 세례대를 지나 성당에 들어간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세례대 덮개는 대성당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위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 이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아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세례당과 세례반

 우리가 쉽게 잘 구별하지 못하고 쓰는 용어가 세례반(洗禮盤)과 세례대(洗禮臺)다. 세례반은 욕조처럼 바닥을 내려서 만든 것이고, 세례대는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성수를 담는 그릇을 올려놓은 것이다. 영어로는 모두 `baptismal font`(piscina)이다. 비교적 큰 세례반에는 흔히 물 안에 들어가기 위한 계단과 물에서 나오기 위한 계단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죽음과 부활을 나타낸다. 세례반이 낙원과 관련된 도상으로 장식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성수대(aqua benedicta fontana)는 신자들이 마귀를 쫓는 의식으로 손에 찍어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할 때 쓰는 성수를 담아 성당 입구에 놓아두는 그릇이 받침 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세례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니 잘 구분해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반이나 세례대가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신 것을 연상하기 위해 자연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가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세례반 속에서 몸을 담게 해 세례를 주었으므로 세례반도 상당히 컸다. 이때 세례반에는 어른용과 유아용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른용은 바닥보다 낮게 하고, 유아용은 바닥보다 약간 높게 해 영세자가 쉽게 몸을 담그거나 머리에 물을 붓기 쉽게 했다. 초기의 세례반은 사방 2m이고 바닥이 대략 70㎝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서 있으면 넓적다리까지 잠기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가슴까지 잠겼다.

 세례는 기본적으로 장소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많은 성당에는 전용 세례 영역, 곧 독립한 세례당(洗禮堂, baptistery)이 있었다. 세례당은 세례반을 둘러싸는 독립된 중심형 구조물이다. 세례당이 따로 독립해 지어졌다는 것은 당시에 세례성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준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든 세례대는 세례성사의 면모,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많은 교회에서는 세례대가 별도의 방이나 경당 또는 교회 내부의 독립적인 공간에 설치됐다. 오래된 세례당의 대부분은 성인 세례 지원자를 많이 수용하는 독립된 건축물로 돼 있었다. 세례당이 따로 있는 성당에서 세례반은 세례당에 설치됐지만 보통은 성당 안에 설치됐다. 또 어떤 세례당은 남녀를 구별하기 위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며, 간혹 남녀를 구별하려고 두 개의 세례당을 지은 경우도 있다.

 성인 신자라도 자신의 탄생을 재현하기 위해 벌거벗은 몸으로 세례를 받는 수가 많았다. 세례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을 정도였으므로 세례당은 눈에 잘 보이게 설계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주교가 모든 세례 지원자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것도 1년에 3번뿐이었다. 세례가 없는 몇 달 동안은 세례의 정통성을 위해 세례당의 문이 주교의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다. 따라서 세례당은 그리스도교 초기 수 세기에는 도시 중심부의 주교좌 성당에만 있었고 교구 성당에는 없었다. 여행하다가 이런 세례당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었음을 기억해 둬야 한다.

 세례당은 씻음을 상징하는 로마의 공중 목욕탕과 죽음을 상징하는 영묘(mausoleum)라는 당시 두 개의 중심형 건물 유형을 본떴다. 이스라엘 쉬브타(Shivta)에 있던 성당의 십자형 세례반(5세기)처럼, 세례반은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는 것이므로 대개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특히 초기 세례반은 사각형이었으나, 유명한 사탑이 있는 피사 대성당의 왼쪽에 있는 거대한 원형 세례당처럼 원형은 삼위일체와 다시 태어남(요한 3,3)을 나타냈고, 6각형은 일주일의 여섯 번째인 금요일과 아담이 창조된 날에서 오는 죽음을 나타냈다.

 세례당에는 8각형 평면이 많았다. 그것은 `창세의 7일간` 다음의 시간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일주일의 첫날, 곧 구약의 7일로 이뤄진 일주일을 지나 제8일에 부활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8각형의 세례당은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나타냈다.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세례당은 5세기에 지어진 첫 번째 세례당으로, 많은 세례당이 이것을 모델로 했다. 3개의 단을 두어 세례반에 내려가며, 세례반의 물은 자연의 샘물에서 받았다. 위에는 금이나 은으로 된 비둘기가 매달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밖에서는 정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야 8각형으로 보이는 것도 있고 12각형 또는 원형인 세례당도 있다.


 
▲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세례당.
 



가톨릭평화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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