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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순교자들] <17> 솔라누스(루돌프) 헤르만 수사

수용소에서도 늘 제일 먼저 경당 찾아 기도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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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누스 (루돌프) 헤르만 수사 (Solanus Hermann)




 
▲ 그림=김형주(이멜다)
 

 
 ▲출생 : 1909년 5월 19일. 독일 아욱스부르크 탈
 ▲세례명 : 루돌프
 ▲첫서원 : 1933년 5월 13일
 ▲종신서원 : 1936년 7월 7일
 ▲한국파견 : 1936년 10월 11일
 ▲소임 : 건축 도장 담당
 ▲체포일자 및 장소 :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
 ▲순교일자 및 장소 : 1950년 12월 13일, 만포 관문리 수용소



 
▲ 수도원 입회 직전에 촬영한 헤르만 수사의 모습.
 


 
▲ 1938년 5월 15일 서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아빠스좌 승격 25주년을 기념해 덕원 수도원을 배경으로 수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맨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솔라누스 헤르만 수사다.
 


 
▲ 덕원 수도원 평수사 경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직수사들에게만 가대의무(라틴어 성무일도를 노래하는 일)가 있었으므로, 평수사들은 별도로 마련된 경당에서 모국어로 성무일도를 바쳤다.
 


한국어를 사랑해 단어장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한글을 익힌 수사. 또 한국 어린이들을 너무 사랑해 그 아이들이 식민지 강점기 일본말을 쓰고 점차 일본인으로 동화돼 가는 것을 너무 가슴 아파한 수사. 솔라누스 헤르만 수사에 대한 동료 수도자들의 기억이다.

 솔라누스 헤르만 수사는 1909년 5월 19일 독일 아욱스부르그 일러베르그 노이울름 지방 `탈`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철공 노동자이던 피우스 헤르만과 마리아 린터 사이에 태어났다. 세례명은 루돌프였다.

 헤르만 수사는 독일의 여느 아이들처럼 가정과 초등학교에서 튼실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4년간 농사일을 배운 그는 1923년부터 3년간 바이센호른 도장(塗裝)장인 하베레스의 수습공으로 일하면서 그림과 칠을 배웠다. 이후 그는 1926년 기능사 시험을 통과해 칠장인이 된 후 1931년 2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입회 전까지 칠장이로 생활했다.

 `솔라누스`라는 수도명으로 수련기를 시작한 그는 1933년 5월 13일 첫서원을, 1936년 7월 7일 종신서원을 했다. 첫서원 직전 그는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거룩한 수도복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이 수도복을 다시 벗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처음에는 아름답게 이어진 산등성이를 보노라면 고향의 산이 생각나 향수병도 앓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솔라누스 헤르만 수사는 종신서원을 받은 그해 10월 11일 덕원 수도원 선교 수사로 파견됐고, 그곳에서 건축 기술자로 일했다.

 덕원 수도원 생활에 대해 그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덕원 수도원을 처음 봤을 때 그 멋진 모습이라니! 이 머나먼 한국에서 동료 수도자들을 만나고, 독일말을 다시 듣자 고향에 있는 것 같습니다.…한국어 문법책을 받자마자 이 진기한 글자와 친해지려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1936년 11월 30일자 편지 중에서).

 솔라누스 하우저 수사는 한국민 특히 한국 어린이와 한국어를 정말 사랑했다. 한국에 온 지 갓 1년을 넘긴 1937년 12월 2일자 편지에서 그는 "처음에는 원산에서 염료를 사면서도 계산서에 쓰인 글을 한 줄도 읽지 못해 한국인 수사에게 번역을 부탁해야 했습니다. 한국말로 의사소통 하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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