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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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39> 건축(8)빛나는 창, 우리가 가게 될 천상 도시의 벽

고딕 성당의 빛나는 장미창, 영원한 그리스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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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의 북쪽 장미창
 
 고대 그리스 신전에는 신역(神域)이 있었다. 이를 그리스어로 테메노스(temenos)라고 한다. 신전과 그것을 둘러싼 일정한 영역이 거룩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건축은 성당이 놓인 대지 전체가 거룩한 공간이 아니다. 거룩한 곳과 속된 것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오직 성당의 외벽뿐이다. 벽 안쪽만이 거룩한 예배의 장소이며, 성당을 격리하는 것은 오직 벽이다.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까지는 돌로 만든 벽이 이 성당을 거룩한 장소로 격리시켰다.

 그런데 고딕의 벽은 그렇지 않았다. 고딕 건축의 역사는 벽을 만든 돌을 돌이 아니게 만드는, 곧 돌이 지니는 물질성을 부정하는 건축의 역사였다. 이를 위해 벽의 많은 부분을 뚫고 창을 만들었다. 건축에서 창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벽에 뚫은 구멍이다. 창을 통해 환기도 시키고 바깥 세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고딕 대성당에서는 창은 의미가 전혀 달랐다. 창의 유리를 채색해 빛을 투과시켰고, 이렇게 들어온 빛은 돌을 삼투하고 돌과 융합하며 돌을 변용시켰다. 그 결과 물질적인 힘, 물질의 중력은 사라지고, 물질을 넘어 무언가 초월적인 것을 지시하는 벽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고딕 대성당의 창은 벽을 뚫어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 아니라, 거룩한 장소로 격리하는 `빛나는 벽`, 아니, `스스로 빛나는 벽`이었다.

그렇다면 고딕 대성당의 창은 왜 `빛나는 벽이 됐을까? 그것은 하느님의 집인 성당이라는 하늘의 도성을 이 땅에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거의 모든 문명에서 건축은 세계의 전형이었고 우주를 재현해줬다. 교부들의 저술에서도 하느님의 집은 천상의 도시, 천상 예루살렘으로 여겼는데, 이러한 교회 건축의 모습은 초기 그리스도교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요한묵시록 말씀을 따른 것이다.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도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성 성벽의 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거리는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묵시 21,18-21). 하늘의 도성은 하늘에 매달려 있고, 그 벽은 금이나 보석으로 빛나는 물질로 지어져 있었는데, 성당은 이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어야 했다.

 사파이어는 차가운 푸른빛을 내고 루비는 붉은빛을 낸다. 인간은 속이 비치며 빛을 투과시키며 안이 빛나는 물질을 언제나 좋아했다. 보석을 투과하는 빛은 물질에 감춰 있던 빛을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보석이라는 물질이 물질로만 머무르지 않고 빛의 광휘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그렇지 않은 다른 물질과는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보석을 투과하는 빛을 보면서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곧 초월적 존재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은 물질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가까워지게 해주는 힘이 있다. 성 빅토르의 후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이들은 신비한 묵상을 통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는 빛의 초월적인 의미를 분명히 해줬다. 이들에게 빛은 하느님의 속성이며 그분이 하시는 일의 권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성 베르나르도는 "자연의 빛이 유리창에 들어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그 빛이 유리의 색을 띠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빛이란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표현해 주며, 거룩한 빛을 받아 성모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셨음을 표현해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딕 건축의 `스스로 빛나는 벽`은 원죄없이 잉태되심의 싱징이었다. 중세 고딕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며 확산하는 빛으로, 빛나는 얼이 어두움의 물질세계와 구분되면서도 물질세계 안에 계심을 보여줬다. 이렇게 하여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하늘의 도성을 만든 온갖 보석을 이 땅에 재현할 수 있었다.

 고딕 대성당과 함께 나타난 것이 장미창이다. 장미창은 고딕 대성당의 서쪽, 남쪽, 북쪽 등 세 개의 통로를 통괄하듯이 그 위에 크게 뚫려 있다. 대성당에서 우리에게 한눈에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장미창일 것이다. 밖에서 보면 돌을 섬세하게 세공한 것으로만 볼 뿐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대성당 안에 들어서 보면 강렬한 빛이 장미창의 신학적인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먼저 성모님을 생각하며 이 창을 성모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장미창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생 드니에 처음으로 나타난 장미창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구세주의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생물들 옆 땅바닥에는 네 얼굴에 따라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에제 1,15-16).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는 말씀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수직을 향하는 고딕 대성당이 원이라는, 이와는 상반되는 자기 완결적인 형태로 장미창을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고딕 대성당의 창은 `빛나는 벽`이다. 고딕 대성당은 우리가 가게 될 천상 도시의 빛나는 벽을 미리 보여줬다. 빛나는 장미창은 극도로 중심적이며 모든 빛의 근원을 뜻한다.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세 개의 창이 아니라, 하나의 빛의 세 가지 모습인 것이다. 세 장미창은 과거(구약)와 현재(신약)와 미래(장차 오실 심판)라는 세 가지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성당은 이 세 개의 시간이 합쳐진 영원한 현재를 재현하고 있다. 또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영원하신 진리이자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고딕 대성당의 새로운 건설 시스템이란 바로 이런 빛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건축이 아니고서는 나타낼 수 없는 하늘의 도성. 하느님에게서 빛이 나오고, 창이 빛나는 벽이 됐으며, 천상의 예루살렘이 우리와 함께 있게 됐다.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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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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