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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순교자들]<20>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

수도원 재정, 수련 책임 맡은 믿음직한 성직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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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

 


 
▲ 그림=김형주(이멜다)
 

 
 ▲출생: 1918년 2월 12일, 북간도 삼원봉
 ▲세례명 및 수도명 : 베르나르도
 ▲첫서원: 1943년 9월 8일
 ▲사제수품: 1948년 4월 6일
 ▲소임: 덕원수도원 재정 부책임 및 한국인 수도자 수련장
 ▲체포일자 및 장소: 1949년 5월 11일 덕원수도원
 ▲순교일자 및 장소: 1950년 10월 5일 평양(추정)   


 
▲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와 덕원신학교 교수진이 신학생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1936년에 촬영한 이 사진 가운데 앞줄 오른쪽 세번째 학생이 김종수 신부로 추정되고 있다.
 


 
▲ 연길교구는 한국천주교회사처럼 선교사보다 먼저 신앙에 목말라한 한국인 평신도에 의해 복음화됐다.
사진은 연길교구장 테오도르 브레허 주교 아빠스가 1937년 10월 18일 삼도구공소를
 

"1896년, 한 사내가 천주교라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내는 이 종교를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친구 3명과 함께 750㎞ 떨어진 서울로 길을 떠났다. 아마도 그는 서울의 초가지붕들 사이에서 교회 하나가 삐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듯했다. 사내들은 회령을 거쳐 청진으로, 또 거기서부터는 작은 연안선을 타고 원산으로 향했다. 육지를 가로지르는 행군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만났다. 신자들이 그들을 루이 에우제브 아르망 브레 신부에게 데리고 갔다. 더는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사내들은 브레 신부에게서 복음에 관한 말씀을 듣고 즉각 세례를 받았다"(암브로시오 하프너 신부 「김이기 혹은 한국의 봄」 중에서).

 이 글 내용처럼 중국 길림성 용정시 호천개 출신 김영렬(요한 세례자)과 `북관(北關) 12사도`가 펼친 간도 지방 선교 활동은 마치 한 편의 조선복음전래사를 보는 듯하다. 간도 지역 조선인 이주민 선교의 중심지는 1907년 용정본당에 이어 1909년에 설립된 삼원봉본당이다.
 
 연변조선자치주 삼원봉에서 출생

 덕원의 순교자 가운데 하느님의 종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가 이곳 삼원봉 출신이다. 그는 1918년 2월 12일 오늘날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자치주 용정시 영암동인 삼원봉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베르나르도.

 당시 삼원봉에는 훗날 서울대목구 보좌 주교였다가 초대 대전교구장이 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아드리앵 조제프 라리보 신부가 지은 아름다운 성당과 학교가 있었다. 또 본당 소유의 언덕에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하르트만노 에벌 신부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삼원봉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면, 매일 저녁 성당에 모여 공동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녀 학생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선창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짧지 않은 저녁기도를 쉽게 따라 익힌다.…신자들이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한국교회 초창기를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본당 공동체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하르트만노 에벌 신부, 1926년 「삼원봉 본당 연대기」 중에서).

 삼원봉은 본디 부촌이었지만 1919년 마적들의 약탈로 가난해진 작은 마을이다. 마적들의 손에 부모가 죽자 어린 김종수는 살아남은 친척의 손에 이끌려 회령으로 가서 전임 삼원봉 주임이었던 빅토리노 차일라이스 신부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1935년 8월 31일 17살에 덕원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덕원신학교에선 이춘근(라우렌시오, 덕원 순교자, 하느님의 종) 신학생이 신학교 가는 길에 마적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적들은 그의 어머니를 협박해 몸값을 요구했지만, 어머니는 몸값을 줄 돈이 없었다. 이춘근 신학생은 3주 동안 인질 17명과 함께 둘씩 묶여 초가에 갇혔다. 그러다 그는 사슬을 푸는 데 성공했고, 감시자가 잠자는 사이 그곳을 빠져나와 공포에 떨면서 사흘 밤낮을 깊은 숲속에서 헤매다 겨우 길을 찾아 용정하시본당 코르비니아노 슈레플 신부한테로 무사히 피신했다.

 중등 과정을 마친 후 1942년 9월 덕원수도원에 입회, 세례명 그대로 수도명으로 삼은 김종수 성직 지망 수사는 지극히 평범한 수도자였다. 다른 한국인 수도자처럼 장상들이 걱정할 만큼 건강이 나쁘지 않았고, 시험들도 무난히 통과해 달리 눈길을 끌 일이 없었다. 그



가톨릭평화신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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