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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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이 땅에 빛을] (12 끝) 기억해야 할 순교자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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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 때 옥에 갇힌 교우들을 뒷바라지하고, 순교자들의 시체를 거두어 이장하는 일을 했던 이문우 성인(탁희성 작). 피신할 기회를 놓치고 결국 체포된다.
 
 
▲ 젖먹이 아들과 함께 옥에 갇힌 최영이 성인(탁희성 작). 아들에 대한 모정으로 순교를 포기하게 될까 두려워 젖먹이 아들을 친척집으로 보내버린다.
 
 
▲ 대신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승지 벼슬까지 올랐던 남종삼 성인(탁희성 작).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의 만남을 주선하려 했지만, 박해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삶 속에 순교자 영성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103위 성인 시성 25주년을 기념한 기획 ‘이 땅에 빛을’ 첫 회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기획의 마지막인 이번 회에서는 그동안 빠뜨렸던 순교자 모두를 다루게 된다. 이번 호를 포함해 총 12회 동안 김대건·정하상 등 익히 알려진 순교자를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까지 103위 성인 모두를 짧게나마 소개했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평범한 우리들이 ‘하지 못할’ 선택을 하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믿음, 103위 성인은 그 믿음을 지켜낸 이들이다.

기획이 나가는 동안 공교롭게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103위 성인이 시성되는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김 추기경은 25년이 지나 순교자 영성을 다시금 기억하자는 이 때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사회 각계에서 몰려드는 추모 인파, 비종교인마저 하나로 만드는 사랑의 힘을 우리는 보았다. 이제 다시금 물을 때다.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이란, 순교자 영성이란 어떤 의미인가.

▨ 가족과 함께 순교자 반열에

▲ 최영이는 서울 회장직을 맡았던 최창흡의 딸이다. 스무 살 되던 해,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지위나 재산을 보지 말고 그저 부지런하고 많이 배운 교우를 찾아달라”며 부모에게 의견을 피력, 조신철과 혼인하게 된다. 조신철은 정하상과 함께 북경을 오가며 신부의 입국을 도왔던 이로, 최영이보다 스물 네 살이 많은 마흔 네 살이었으며 가문도 차이가 많이 났다. 최영이는 3년 여 정도 결혼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 최창흡?어머니 손소벽과 함께 1839년 체포된다. 젖먹이 아들과 함께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는데 아들에 대한 모정으로 혹여 배교를 선택하게 될까봐 젖먹이를 떼어 친척집으로 보내고, 1840년 23세의 나이로 당고개에서 치명했다.

▲ 손소벽은 최창흡의 처이자 최영이의 어머니다. 신자 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유배를 가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하면서 교우들과 떨어져 성장하게 된다. 오랫동안 교우가 없는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천주교를 배우지 못하다가 최창흡과 결혼하면서 함께 대세를 받고 다시 신앙 생활을 한다. 1840년 당고개에서 참수당함으로써, 남편 최창흡?딸 최영이?사위 조신철과 함께 성인 반열에 올랐다.

▲ 고순이는 어려서부터 천주를 섬기며 성장, 순교자 가문의 후손이자 서울 회장인 박종원과 결혼했다. 남편의 회장 직무를 거들면서 냉담자를 권면하고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생활하다 체포된다. 그는 “평상시에는 치명이란 말만 들어도 무섭더니 신이 은총으로 나를 도우시어 이제는 겁도 나지 않고 도리어 기쁘다”며 평온한 모습으로 고문을 받았다 전해진다. 1839년 42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치명했다.

▨ 서소문 밖과 당고개에서

▲ 남종삼은 사회적 출세를 꿈꾸는 자신의 욕망과 가문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과거에 응시, 26세 때 홍문관 교리에 급제하여 39세에 경상도 한 고을의 현감이 되었다. 벼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낸다거나 조상 숭배의 미신적 성향을 띤 국정의 공적 의식에 참여할 때마다 신앙에 반하는 행위라 괴로워하였다 한다. 하지만 현감 업무를 보면서도 교우로서의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곤경에 처한 가난한 이들을 보면 구하려 노력했다. 현감에서 물러난 후에는 승지가 되어 왕궁에 머무르면서 대신들의 자녀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이후 외국 선박이 조선의 국경을 넘나듦을 계기로 박해가 시작되어 1866년 체포되었고, 벼슬까지 한 이가 사악한 잡교를 숭상한다 하여 모진 고문을 받고 50세에 치명했다.

▲ 우세영은 18세 때 진사 시험에 급제하였으나, 천주교를 알고 나서는 가족과 지인들의 협박과 설득에도 벼슬길을 거부한다. 가족들이 천주교에 빠진 그에게 매질까지 하였으므로 집을 나와 서울 교우 집에서 지내며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찾는다는 소식에 1년 여 만에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 모두를 설득, 20여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함께 세례를 받도록 했다. 이후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 친척 모두와 고향을 떠났다가 체포, 1866년 22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 정문호는 원님까지 지냈으나, 천주교를 알고 나서는 모든 관직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박해를 피해 고향도 등지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지냈다. 전주 지방 교우촌에 정착해 있다가 1866년 박해 때 체포되었고, 희열에 찬 얼굴로 고문을 받고 형장으로 향했다 전해진다. 66세의 나이로 숲정이에서 순교했다.

▲ 김아기는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미신을 숭상하는 남자에게 출가해 오랫동안 미신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교우였던 언니가 그에게 우상의 헛됨과 무익함을 설명해주었고 그 때부터 천주를 섬겼다. 그의 언니는 김아기를 영세시키려 교리를 가르쳤으나, 머리가 둔했던 김아



가톨릭신문  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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