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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⑥ 성 라우렌시오

불에 타 순교하는 순간 극적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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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의 대가 티치아노
성 라우렌시오 화형 장면서
고통보다 순교의 행복 묘사

 

 
▲ 작품 해설 : 티치아노,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1545-67, 440×320cm, 에스코리알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림을 직접 보게 되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여행 중에 티치아노의 그 유명한 ‘성 라우렌시오’를 본 순간을 잊을 수 없으며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아! 티치아노의 작품이 이런 대접을 받았구나’ 라는 것이었다.

몇 해 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에스코리알 궁전을 방문했다. 수백 개의 방이 있는 이 궁전을 관람하려면 하루를 잡아야 한다.

스페인 역사상 황금기는 16세기 중 후반이다. 이 시기에 스페인은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들을 지배했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신대륙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이 당시 스페인 국왕의 거처가 에스코리알이었다.

황제 카를 5세는 티치아노를 최고의 화가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자신의 전속 초상화가로 삼았다. 그의 아들 필리페 2세도 어려서부터 부친 밑에서 이 대가의 솜씨를 봐온 터라 에스코리알 궁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중앙 제단화로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를 선택했다. 필리페 2세는 1554년 이 그림을 주문했고, 1567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으니 그림이 원래 장소에 보존된 귀한 사례가 됐다.

285년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성 라우렌시오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당했던 시절에 살았으며 교황 식스투스 2세 치세 때 교황 곁에서 부제직을 지냈다. 식스투스 2세는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발각돼 사형을 당했는데,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라우렌시오에게 “3일 후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과연 로마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라우렌시오에게 교회의 보물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성인은 3일의 말미를 달라고 한 후 교회의 보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3일 후 성인은 황제 앞에 가난한 자들을 데리고 나타나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성인은 불에 타 죽는 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성 라우렌시오가 순교의 순간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고 했다는 말이 전설로 전해진다. 라우렌시오의 순교 그림들은 이 일화에서 비롯되었으며, 5세기부터 석쇠는 성인을 상징하는 표징이 되었다.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달궈진 쇠 철판 위에서 죽어가는 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라우렌시오는 상체를 약간 일으키며 한 손을 뻗어 위쪽에 있는 두 천사를 향하고 있는데 표정으로 보아 타죽어가는 고통을 호소하기 보다는 순교의 행복을 전달하려는 듯이 보인다. 성인의 주변에는 삼지창으로 성인을 불로 밀어 넣고 있는 사형집행인, 불이 좀 더 잘 타오르도록 엎드려서 불쏘시개로 불을 헤치고 있는 병사, 순교를 지휘하는 말 탄 기사 등 다수의 등장 인물들이 있지만, 그림의 배경이 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모습은 어둠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화면 좌측에 타오르고 있는 횃불과 아치 건너편 밤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은 어두운 밤을 밝히는 유일한 조명 역할을 하고 있다.

밤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티치아노의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가는 불에 타 숨지는 순간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낮보다는 밤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이 작품보다 1세기 후에야 제작되었으니 왜 티치아노를 빛과 색채의 대가라 부르는지 이 그림은 말해주는 것 같다.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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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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