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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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르포] 한국 전통제의 제작하는 공방을 찾아서

시간·노력으로 부활한 전통제의를 만나다/ 장인 4명이 3~4개월에 한 벌 완성/ 전 과정 수작업하면서 기도 바쳐/ 수익보다 봉헌하는 마음으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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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통제의를 제작하는 이지영 작가와 전통기법을 통해 완성된 제의.
 
 
교회는 빛깔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받아들여 교회력의 시기에 따라 다양한 색의 제의를 입는다. 결백, 그리고 기쁨과 영광을 상징하는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그리스도 부활의 영광을 기뻐하는 부활시기의 제의 색이다.

부활시기의 제의는 한국 고유의 전통기법과 만나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국 전통제의를 만드는 이지영(로사리아) 작가의 공방에서 전통제의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전통기법으로 제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마치 부활과도 같다. 오랜 시간을 거쳐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을 담은 천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성덕,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희생,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 등을 상징하는 제의로 부활한다.

먼저 천은 우아한 광택과 풍부한 촉감을 가진 명주실로 짠 직물을 사용한다. 이런 명주의 성질은 생명주의 불순물을 깨끗하게 제거한 후에야 나타날 수 있다.

명주 위에는 상징물들이 새겨진다. 그리스도를 뜻하는 키로(XP), 알파(Α)와 오메가(Ω), 비둘기, 면류관 등 교회의 상징들과 구름 등이 어우러진다. 예로부터 동방에서 구름은 고귀한 것을 상징했다.

천이 마련되면 재단에 들어간다. 재단을 위해 치수를 재고 나면 디자인에 들어간다. 사제 서품 성구와 그 성구에 대한 사제의 묵상을 듣고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혹은 준비하면서 겪은 신앙체험을 듣는다.

사제서품식을 위한 제의라면 특히 그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사제서품식을 준비하는 교구 부제 중 많은 이가 이 전통방식의 제의를 주문했다. 자신을 끌어주신 하느님, 벙커 안에서 만난 예수님. 같은 하느님을 체험하면서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처럼 사람의 손에서 탄생한 제의에는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디자인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백색 제의의 염색은 까다롭다. 다른 제의의 경우엔 전체를 물감에 담가 염색하는 침염(浸染)으로 염색하지만 흰 바탕을 둔 백색 제의는 더 복잡한 방식으로 염색해야 한다.

사실 전통방식의 염색은 거의 사라져 가던 방식이다. 침염 등의 단순 자연염색은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고 있지만 대량생산을 추구하고 디지털 방식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통방식은 뒤편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또 인공섬유가 대부분을 이루는 최근 시장에서 천연섬유만을 염색할 수 있는 전통방식은 그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염색은 염료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식물, 광물을 활용한 염료는 염색할 때마다 곱게 갈아 체에 걸러 물에 탄다. 염료의 배합이나 물 온도에 따라 색이 다채롭게 변화하기 때문에 염료의 빛깔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염색의 주재료는 붓.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염색은 무엇보다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나무틀에 고정한 천에 다양한 염색용 붓을 이용해 천을 물들여간다. 백색이 강조되는 제의 특성상 물과 섞이지 않는 밀랍을 활용해 문양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스프레이로 그러데이션 염색도 자주 사용한다.

염색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의는 관상용이나 장식용이 아닌 실제 미사 거행에 사용되는 실용품이기 때문이다. 염색된 천은 색이 빠지거나 변하지 않게 하려고 찐다. 천을 찌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1시간가량. 염색 작업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찌기도 한다.

천에 색이 곱게 입혀지면 다음은 자수다. 기계로 자수를 만들면 빠른 시간에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전통제의 제작에는 기계 자수를 선호하지 않는다. 기계 자수로는 손 자수만큼 부드럽고 깊이 있는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통제의 제작에는 누빔, 자수 등의 작업을 모두 손으로 하는데 이 작업을 하는 장인들은 모두 작업을 하며 기도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반복적으로 외거나 기도문을 바치는 등 바느질 박자에 따라 울리는 기도는 마치 노래를 듣는 듯하다.

자수를 마치고 마감을 하면 제의가 완성된다. 제의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명의 장인이 작업해도 평균 3~4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혼자서 완성하려면 1년을 꼬박 만들어도 모자르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시간만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들이는 품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전통기법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이미 60여 년 전부터 이어졌지만 그 기술을 지닌 장인은 드물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해야 하는 전통제의 제작과정은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무리가 가는 일이다. 그렇다고 전통제의가 기계 작업으로 만든 제의보다 비싼 것도 아니다. 장인들은 수익을 내기보다 봉헌하는 마음으로 제의 제작에 임하고 있다.

실이 천이 되고 천이 제의로 다시금 태어나는 이 부활은 단순히 동서양 기술의 조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옛 제의를 복원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 이지영 작가는 한국 전통의상에 담긴 의미가 전례를 만나 그 빛을 더욱 발한다고 설명한다.

전통의상에 자주 보이는 색동은 ‘무지개’를 상징한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 무지개의 빛은 하나로 모이면 새하얀 빛으로 변한다. 바로 부활시기에 입는 백색 제의의 빛깔이다.

이 작가는 “무지개의 색은 도화지에 섞일 때는 검게 변하지만 빛으로 섞일 때는 백색이 된다”며 “빛이 없으면 모든 색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제의를 제작할 때 빛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제의가 부활했다. 전통기법으로 정성스레 완성된 새하얀 제의를 바라보자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 외치는 사제의 엄숙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한국 전통제의 제작 과정




가톨릭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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