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창간25주년 현장르포] 신앙의 기쁨으로 사는 안혜자씨(미카엘라, 서울 양천구 가톨릭교우회 총무)

인내, 기도의 삶 속에 ''신앙의 행복'' 활짝 피어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1988년 5월 16일. 재개발로 황량한 아파트만 세워져있던 목동신시가지에 양천구청이 들어섰다. 퀀셋(Quonset Hut) 가건물이었다. 안혜자(미카엘라, 47, 양천구 보건소)씨는 막 강서구에서 분구된 터전에서 공직의 길을 걷게 됐다. 이른바 `5ㆍ16 입사자`였다. 전날인 5월 15일 교구에 평화신문이 창간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즈음 천주교 신자들이 하나둘 구청 휴게실에 모여들었다. 23살 막내였던 그는 막 결성한 가톨릭교우회 총무가 됐다. 그 뒤로 25년 세월이 흘렀다. 중간중간 침체기도 있었지만, 그는 한결같았다. `마당발`처럼 선교의 끈을 이어갔다. 설립 당시 10여 명 안팎이던 양천구가톨릭교우회 회원은 이제 예비신자를 포함해 193명으로 성장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25년째 양천구 가톨릭교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안혜자씨는 "요즘엔 주위 모든 게 다 하트처럼 보인다"면서 자신이 기도를 바칠 때 켜는 촛불에서도 하트를 보곤 한다고 말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양천구 보건소 입구에 마련된 안내데스크에서 안혜자(오른쪽)씨가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여직원들이 들고 있는 목제 아령이나 안마봉, 목제 받침대 등은 지난해 태풍 때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을 잘라 만든 것들이다.
 


 
▲ 25년째 양천구 가톨릭교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안혜자씨의 감사노트.
 
 
 #시련 중에도 신앙의 힘으로

 우스갯소리였지만 다들 초창기엔 `동냥미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 달에 한 번 미사였지만, 목동성당으로, 고척동성당으로 떠돌아야 했다. 다들 소원이 매달 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다. 담당 신부도 없었다. 고민도 많이 쌓여갔다. 정말 척박한 여건이었다. 그렇게 침체기가 찾아왔다. 1993년께였다. 미사도 끊겼고, 공동체는 시들해졌다. 그저 명맥만 이어갔다.

 그런 와중에 집안에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1989년 결혼한 이후 함께 살던 시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으로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고, 계단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다. 큰 딸은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선배들 요구에 시달려 이사를 해야 했다. 시댁 건사에 자녀들을 돌보느라 몸이 대여섯 개쯤 됐으면 싶을 정도였다. 남편과 이혼하려고도 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터다.

 그래서 틈만 나면 성당을 가게 됐다. 성경필사도 시작해 신약 쓰기도 마무리했다. 감사 노트도 썼다. 모든 게 감사 항목이 됐다. 심지어는 발톱이 빠져도 하나만 빠져 감사하다고 적었다. 이같은 감사 속에서 혼인한 지 15년 만에 시어머니도 용서했다. 그래선지 시댁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됐다. `사랑은 인간이 하고 용서는 하느님이 하신다`지만, 용서하고 나니 모든 게 새롭고 기뻤다.

 직장 생활도 날로 새로웠다. 궂은 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잡일은 더 열심히 했다. 주택과에 있을 땐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전세자금 지원을 받으려는 그분들에게서 전 예수님 눈빛을 봤어요. 집을 비우고 길거리에 나앉은 장애인들을 돕다 보니 주님께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지요. 한 번은 운송비 40만 원을 내지 못해 이삿짐이 압류돼 있다는 한 장애인의 하소연을 듣고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다가 점심 시간에 동료들에게 말을 하니 함께 돕자고 해서 각자 사비를 걷어 도운 적도 있어요. 그 뒤부터는 보는 것마다 은혜가 넘쳤어요. 모든 게 하트처럼 보이더군요."

 "어느날 시누이가 언니는 내 롤모델(본보기)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참고 인내하며 기도로 함께하니 가족들이 모두 다 한마음이 됐어요."


 #되살아난 교우회

 그런 기쁨 속에서 양천구가톨릭교우회도 되살아났다. 2003년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에서 교리교육 신청 공문을 보내오자 그는 교리교육을 받으라고 주변에 열심히 권유했다. 교우회를 살리기 위해선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맨날 미친년 널뛰듯 했다." 때론 총무라는 짐이 너무 무거워 내려놓고도 싶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니 성경을 읽으라는 보속을 받아 성체조배실에 가 기도를 한 뒤 성경을 펴드니 읽는 곳마다 `순명`이라는 말씀이 나왔다.



가톨릭평화신문  2013-05-1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9

집회 3장 14절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지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