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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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예신반 사제 · 학부모 동행 수련회

산 바람 하느님 … 그리고 부르심 안의 우리/ 16km 여정의 설악산 등반 … 대청봉 올라/ 어려운 성소의 길 ‘함께 가자’ 의미 심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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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대청봉 정상에 오른 참가자들이 파이팅을 외쳤다.

19~21일, 서울 동성고등학교(교장 박일 신부) 예비신학생반(이하 예신반) 1학년 학급 학생 23명이 설악산 산행에 나섰다. 예신반이 만들어진 2010년 이후 매년 열리는 여름행사인 ‘1학년 산행’은 졸업한 선배 예신반 학생들이 꼽는 최고의 추억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에서 학생들은 오색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을 오른 다음 중청대피소를 거쳐 희운각~비선대~소공원으로 하산한다. 총 거리 16km, 약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험난한 여정이다. 아울러 이번 여름 행사는 학생들의 부모 18명도 함께했다. 기자도 직접 그들의 산행에 동행했다.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왜 등산일까? 2박3일 일정을 함께한 동성고 예비신학생 담당 안승태 신부는 “힘든 길이기 때문에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힘든 산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느님과 만나게 됩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학생들 스스로 체험을 통해 그 산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시작은 파이팅 넘쳤다. 학생들은 서로 장난을 칠 만큼 여유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도 없이 이어진 돌계단을 오르며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자발적 대침묵에 돌입했다. 거친 숨소리, 등산화가 돌덩이를 짓이기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졌다.

이현우(베드로)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사제의 길을 꿈꿨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성소를 발견하고 키워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느 늦은 밤, 잠에서 깨 거실로 나왔는데 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정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꿈은 조금씩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군은 학교 친구들에게 속 시원하게 자신의 꿈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하루는 친구에게 ‘신부’가 되겠다고 하니 그럼 난 ‘신랑’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대화가 더 진행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이군에게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지금 예신반 친구들은 ‘동지’에 가깝다.

“신학교를 포함하면 거의 13년 이상 함께 할 친구들이잖아요. 같은 목표가 있어서인지 서로에게 큰 힘이 돼요. 힘들겠지만 한 걸음씩 함께 가려고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지금 우리가 고작 1km밖에 안 왔다고?”

한 학생이 대청봉까지 예상시간을 알려주는 중간 이정표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한참을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00m를 14초에 뛰는 아이들에게 산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곳이었다.

4시간 걸려 도착한 대청봉은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못됐다. 하지만 탐방로 입구에서 대청봉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하기로 이미 약속된 터. 먼저 도착한 조는 다른 조가 도착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렸다. 11시 40분, 학생들 사이에서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황찬하(46·야고보)씨와 아들 규남(디오니시오)군이 도착한 것이다. 땀으로 범벅된 부자의 얼굴에는 그제야 웃음꽃이 폈다.

“출발 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라고 하며 나를 붙잡고 오르는 거예요.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전에는 매번 산을 오르다 힘들다고 포기했던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달라진 모습을 본 거죠.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어요.”

황씨는 애초에 아들의 예신반 진학을 반대했다고 했다. 그 어떤 길 보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이가 꿈을 포기했을 때 받을 상처가 두렵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부모 입장에서 하나뿐인 아들이 예신반에 가겠다는 걸 말리고 싶었어요. 수학, 과학에 소질이 있어 보이기에 그쪽으로 공부를 좀 더 했으면 바랐어요. 그런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에 나가더라고요. 6개월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학교의 관심과 지원, 담임 선생님과 담당 신부님의 헌신과 애정, 이제는 거듭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중청대피소에서 맞이하는 점심시간, 학생들은 새벽에 어머니에게 받아든 간식 주머니를 열어본다. 먹음직스러운 주먹밥 세 덩이와 오이, 자두, 초콜릿, 사탕 등 푸짐하다. 모두 어머니들이 새벽부터 준비한 간식이다.

“아니 주먹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입에서 녹는다 녹아”

꿀맛은 주먹밥뿐만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바람도 유난히 달았다. 한 어머니 동반자는 ‘성령의 숨결’이 우리와 함께한다고 했다. 그만큼 등산하기 좋은 날씨였다.

간식도 먹고 좀 쉬었겠다, 아이들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한 학생이 ‘주님의 기도’를 성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이 다음 소절을 이어받아 부르더니 결국 한 조의 모든 학생이 합창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후 생활성가 몇 곡을 더 이어 불렀다. 설악산에 성가메들리가 울려 퍼졌다.

전완즉(사도요한·46)씨는 “예신반 친구들이 모두 다 내 자식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예신반 학생들에게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요. 아이들이 부모의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하느님 사랑 안에서 부르심을 잘 키워 올바르게 자라나길 바랍니다.”

하산길,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가는 길도 고되다. 희운각과 비선대를 지나 이날 등산의 마지막을 향해 내디딜 무렵에야 학생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수많은 봉우리가 낯설다.

“우리가 진짜 저 봉우리에 올라갔다 온 거야?”

“아니. 저기 저 봉우리 말고 저 너머있는 제일 높은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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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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